(사)한국JC 제45대 중앙회장 : 홍성태


수일 전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의 사망이 확인되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어찌됐던 그의 변사는 상식을 뛰어넘는 황당한 사건으로서, 그의 죽음에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철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남들보다 더 숭고한 인생철학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유병언의 예상치 못한 황당한 최후를 보면서, 특히 사회지도층에 대한 ‘죽음’이라는 화두에 대해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에도 품위와 예의가 있다. 즉 어떻게 죽었는가,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책임과 평가가 달라진다. 수십만 신도를 거느린 교주가 도피 중 자살인지 타살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변사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런 교주를 믿고 신앙생활을 해 왔던 신도들의 허탈함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런지.

자살이라면 더 더욱 무책임하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도피다. 자살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심각한 사회적 병폐이다. 이름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자살이라 할지라도 가족, 친구, 친인척에게 던져주는 충격파는 크다.

2009년 5월 23일 새벽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작금의 유병언 죽음보다 우리사회에 던진 충격과 허망함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대통령 자리란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영원한 업보다.

그런 분이 쉽게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납득될 수 없다. 국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비록 임기기 5년 밖에 되지 않더라도, 5년간의 모든 국정책임은 대한민국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무한책임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최진실, 조성민 등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의 자살 역시 무책임한 자기 자신의 몰락이요 현실도피다. 교주, 대통령, 연예인, 스포츠맨의 황당한 최후와 자살은 우리시대의 절박하고 심각한 정신붕괴의 천박한 가치관이요, 황폐하고 허망한 국민정서의 극단이다.

자신이 한 때 어느 집단이 사회, 또는 국가의 지도자였다면, 왜 당당하게 나서서 ‘자신의 잘잘못’을 심판받지 않으려고 하는가? 참회와 성찰이 필요하다면, 깊은 반성과 속죄를 하면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어야 하고, 자신의 크나 큰 실수에 대해 참된 용기와 진정함으로 국민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종교지도자,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자 내지 여론주도층의 가치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도자(指導者)는 무엇이 지도자인가? 지도자란 손가락(指)으로 인도하는(導) 사람(者)이다. 무엇으로 인도해야 하는가? 함께 추구할 수 있는 ‘희망과 꿈’이다.

우리나라가 10년째 OECD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다. 극심한 빈곤에서 오는 노인 자살률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복지국가로의 지향’을 추구하는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부르짖음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국가·사회 지도층의 허망한 최후와 자살, 그런 가치없는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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