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현과 대왕금강송 특집 ... 1편


본사는 최근 한국사회 큰 이슈가 되었던 장국현 작가와 울진 대왕금강송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향후 6회분 특집면을 연재한다.
2010년 1월 22일 국내 매스컴 중 영남일보가 처음으로 특집보도를 하기 시작하여 모두 6차례 특집면을 꾸몄다. 이 6회분 내용을 전제하여 장국현 작가가 어떤 작가이며, 어떤 과정을 통하여 대왕금강송이 발견되었으며, 이 금강송에 대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의 감을 잡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사각(死角)의 미학'이 있다.

북녘 응달의 심산 숫눈. 아무도 모른다. 최고수 심마니 외엔 옷고름을 풀지 않는다. 산삼도 '북극성' 같은 자태로 은거한다. 쉬운 건 쉬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가슴과 맘의 단계가 아니라 '혼(魂)'의 단계로 격상되면, 성정은 더욱 '고혹질박' 해진다. 뭘 '도모'치 않고 추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의 언변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 된다. 입보다 귀가 커지고, 강요보다 이해를, 비판보다 배려가 흘러넘치니 사람이 모여들고 천적도 거의 사라진다.

사욕이 공욕(公慾), 일종의 '의기(義氣)'로 승화되는 셈이다. 이때 '거장(巨匠)'이 태어나는 법. 그건 계획보다 '집념과 몰입'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소나무도 '사각(死角)'을 즐긴다. '속송(俗松)'과 '성송(聖松)'이 있다.

보통사람은 소나무의 모양에 반한다. 하지만 내공이 깊어지면 그 '맘'(氣像)을 엿보려 한다. 천하명송(天下名松)은 맹수처럼 편한 포인트에서는 볼 수 없다. 관광과 여행의 맘이 아니라 '구도심'이라야 볼 수 있다.

소나무의 수명을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수천년을 산다고도 한다. '남산 위 저 소나무'도 있지만 이건 '애송이급'이다. 미술로 말하자면 '간판그림' 정도다. 예쁘장한 분재 같은 소나무는 '죽검(竹劍)' 수준이다. '진검' 같은 소나무는 일반 산에는 없다.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 같은 '송혼(松魂)'을 낚으려면 태산준령에 들어야 한다.

설악산~태백산~오대산의 메이저급 소나무가 의기투합해 만든 소나무가 바로 조선조 '국송(國松)'으로 불리던 울진군 서면 소광리 '대왕금강송'이다. '금강산 창터솔밭'에서 유래한 금강송(金剛松). 이 나무가 바로 조선왕실 전매목으로 사용된 '황장목'이다. 금강송 중 가장 우람한 대왕송(둘레 5m, 수고 9m), 소광리의 '산신령'이다. 해발 900m 강풍과 암릉지역, 대왕송은 몸을 바위처럼 움츠리고 오랜 세월을 살았다.

지난해 한 사진작가가 '그 어른'을 천신만고 끝에 발견했다. 바로 산과 소나무의 사진작가 장국현이다. 예순여덟이지만 호랑이 눈빛이고 시전 모임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1989년 백두산 천지 사진 신드롬을 일으킨 데 이어, 요즘 '운석' 같은 고송 시리즈를 발표하며 금강송 군락지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소나무처럼 살아가는 그가 밝히는 송담(松談)을 담아본다.

◇… 소나무의 수평미학 수직미학

소나무는 수평적·수직적 미학을 동시에 갖고 있다. 수평적인 건 내재된 미학, 수직적인 건 어떤 형태적 아름다움을 더 노린다. 국내에서 소나무 사진을 찍는 작가가 많지만 가장 유명한 작가는 장국현과 배병우. 영국의 팝가수 엘톤 존이 구입해 유명세를 치렀던 배병우의 사진은 경주 남산 삼릉과 안강 흥덕왕릉 솔숲이다. 하지만 장국현은 소나무의 모양보다 기상, 즉 '송혼(松魂)'을 낚는다.

현재 장국현이 인화한 소나무 사진 중 가장 큰 것은 가로 6m 짜리로 대구시교육청, 대구문화·북구·대덕문화예술회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데 원판 필름이 무려 가로 11, 세로 14인치. 필름값만 3만~5만원. 최대 15m까지 크게 확대할 수 있다.

경인년 원단을 맞아 고송 찍기에 올인하고 있는 사진작가 장국현을 청도 자택에서 만나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소나무에 얽힌 숨은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고산에서 6개월 버티기 전략

등산로가 끊어진 데서 평균 5시간 이상 올라간 척박한 곳에서부터 늙은 소나무 사진촬영이 시작된다. 좋은 소나무일수록 호랑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장기전'을 벌여야 한다.

물론 대피소도 없다. 텐트도 매번 가져가기 힘들다. 암벽 사이에 숨겨놓고 내려온다. 혼자는 불가능하다. 보통 3명이 도우미로 나선다. 최일섭 같은 전문산악인이 가이드를 한다. 다음은 물담당이다. 개울까지 내려가려면 편도 3시간 이상, 그래서 넉넉하게 가져가야 한다. 다음은 필름, 카메라, 침구 및 취사 도구 책임자가 필요하다. 한번 올라가면 최하 5~7일만에 내려온다.

식수밖에 없고 양치와 세수는 하지 않는다. 오전 3~4시에 일어나 고고학자가 공룡화석 찾듯 헌팅을 한다. 매번 천길 낭떠러지 옆을 지나가야 한다. 그는 무당처럼 늘 소나무에 홀려있어 평지를 걷는 듯 하단다. 괜찮은 나무가 나타나면 일단 정글용 삭도 등으로 주변 잡목을 정리해 시야를 확보한다. 나무 앞까지 접근하기 위해 록클라이머처럼 자일을 몸에 걸어야 한다.

한 나무를 한 번만 촬영할 순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달라진 주변 환경을 반영해 달리 찍는다.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안 되면 5~10번도 찾아간다. 소나무 근처에 구름이 몰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설악산 소나무의 경우 오호츠크 기단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1년에 멋진 운해가 오는 날은 불과 며칠밖에 안된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한다. 정상적인 식사를 멀리한다. 생식만 한다. 청국장가루와 솔잎과 송홧가루 넣은 걸 물에 타서 먹으면 끝이다. 간식은 소나무 향기다.

"고송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산에서 내려와 집에 오면, 기운이 너무 뻗쳐 잠을 못 이룹니다. 일흔을 앞뒀는데 아직 감기도 한번 안 걸렸어요. 2~3시간 자고 일어나 소나무 사진과 대화를 하면서 보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눈빛은 '호안(虎眼)'이다.

◇… 소나무에 얽힌 몇 가지 비밀들

소나무 가지가 붙은 '연리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바람이 만들어 낸 걸작품. 울진 대왕금강송 가지도 연리지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굽어진 소나무 가지가 태풍 등으로 인해 다른 목피에 연이어 부딪히면서 그 부위가 상처가 나고, 상처 난 부위에서 송진이 흐르고 그런 과정이 수만·수십만번 계속되면서 가지가 붙게 된다.

300년 이상 늙은 소나무를 보통 '노송'(老松)이라고 하는데 노송도 급수별 명칭이 따로있다.

노송보다 더 늙은 건 '고송'(古松)이라고 한다. 장국현의 아호도 고송이다. 고송 다음 급수는 나무의 단계를 초월했다는 의미로 '초송'(超松), 초송 단계를 넘어 입신의 단계에 이르면 '신송'(神松)이 된다. 그는 울진 소광리 대왕금강송을 처음 보는 순간, 존경의 맘을 너머 두려운 맘이 들어 고유제를 지냈다.

솔잎도 사계절 색이 다르다. 봄에는 신록, 여름에는 진록, 가을에는 회록색, 겨울에는 거무튀튀해진다. 그런데 오대산은 봄의 빛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정말 솔잎이 영롱하게 보였다. 그 이유는 뭘까?

"해발 1천m 고산암벽송은 수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지에 삽니다. 봄에 잎이 나오자마자 수분이 너무 부족해 그 상태의 빛깔이 겨울까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잎도 짧고 봄빛깔을 그대로 유지하니 얼마나 좋은 사진이 나오겠어요."

◇…소나무 사진 찍으면서 생긴 해프닝

겨울 폭설맞은 소나무 사진은 정말 찍기 힘들다.
조금 와선 올라가지 않는다. 그림이 안 되기 때문이다. 최소 30㎝ 이상이어야만 한다. 지구온난화 탓에 갈수록 눈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3년전에 60㎝ 폭설이 내렸다. 전문산악인 최모씨와 함께 울진 금강송 능선에 밤에 올라갔다. 눈이 허벅지까지 쌓이면 정상 도보속도보다 5배 이상 더디다. 1㎞ 가는데 3~4시간 걸린다. 1m 이상 쌓일 경우 걷는 것 자체가 곤란하다. 그냥 밀고나갈 수 없다. 발을 헤엄치듯 번갈아 올려야 한다.

전문산악인도 이런 조건하에선 1시간에 100m도 못나간다. 울진 대왕금강송 찍을 때는 500m 접근하는데 무려 3시간 걸렸다. 하지만 이런 호재도 잠시 방심하면 눈이 녹아버리거나 가지 위 눈이 떨어져버리면 다음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바닷가 노송은 일반인에게는 보이지도 않지만 설사 보여도 목숨을 걸고 절벽 아래로 로프를 묶고 내려가야 한다.

한번은 거제도 산책길에서 꼭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앉은 해룡송 한 그루를 발견했다. 즉시 일차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자일이 없어 후퇴했다. 구도상 아래서 위를 보고 찍어야 하기 때문에 해룡송 아래 자리한 암송 가지 위에 자일타고 내려가 거기에 삼각대 설치하고 목숨 걸고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현재 가장 신령스럽고 몸집이 가장 큰 소나무는 울진 소광리 대왕금강송이란다. 소나무 중 소나무는 금강송, 금강송 중 금강송은 단연 '대왕금강송'.

아직 장씨가 전시장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이 소나무는 작년 여름 두달 꼬박 찾아다녔다. 틈만 나면 산에서 지내는 울진원전의 한 직원의 제보를 토대로 현장으로 나섰다. 밤에 20여시간 걸었다. 500년생 울진 소나무도 찍었는데 대왕송은 수령 1천년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내송(內松)과 외송(外松)

1천년 이상 사는 소나무는 사실 수호신·산신령이나 마찬가지다.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그 신단수, 장국현은 그게 바로 조선의 노송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도와 교과서, 주민들이 알려준 일반 등산 코스에서 보이는 소나무는 그가 찾는 소나무가 아니었다. 그 소나무는 이미 사람의 냄새에 너무 찌들어 있었다.

그는 그런 소나무를 '내송(內松)', 산삼처럼 인적이 드문 고산준령 암벽 등에 은거한 소나무를 '외송(外松)'으로 본다. 일종의 우도와 좌도로 이해해도 좋다. 몇년간 그가 만난 건 거의 내송이었다. 5년여 허송세월이었다. 천연기념물, 보호수, 노거수 등은 일반인들 눈에는 괜찮았지만 그에게는 조잡하게 보였고 성성한 기운도 없고 사진을 찍어놓아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런 건 사진이 안된단다.

그림이 되려면 굵고, 키도 작고, 그러면서도 가지가 너무 길게 나와선 안된다. 가끔 벼락을 맞아 가지 한쪽이 부러진 뼈 같은 질감이 나야하고, 거무튀튀한 껍질도 벗거져 붉은 기운이 목피에 가득해야 좋다. 한 마디로 다른 수목과 완전히 구별되는 초대형 분재 같은 소나무를 찾아다닌 것이다.

"산삼도 군락을 짓듯 신령한 소나무는 여느 산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거의 백두대간 중 설악산~울진권에 집중돼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눈보라가 세찬 곳 소나무일수록 더 그림이 좋습니다. 불굴의 기상,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고매한 품격까지 느껴지죠.

현재 그가 추천한 한국 최대 노송숲은 경주 남산 삼릉, 안강 흥덕왕릉, 안동 백운정 개호송 솔숲, 울진 소광리 금강송숲. 흥덕왕릉은 오케스트라 같고, 삼릉숲은 신비로움의 극치, 개호송숲은 기상의 절정, 그는 울진 금강송숲을 제일로 친다. 현재 안동시청 현관에 실물 크기의 개호송숲 사진이 걸려 있다.

*장국현은

원래 영남대 약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1970년 사진에 입문, 후에 스승 신국현 문하에서 벗어나 1989년 산사진에 모든 걸 건다. 그해 한·중수교 3년전 국내에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백두산 천지 사진 촬영에 돌입한다.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 8시간 촬영삼매경에 들어 천지 사진 300여 컷을 찍어 국내에 유포, '천지사진 신드롬'을 일으킨다. 국내 사진작가 중 첫 천지 사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정주영 등 국내 거물들이 그 사진을 갖는다. 하지만 그는 천지에서 벗어나 소나무로 대상을 옮긴다. 소나무 재선충 및 한국 아열대화로 인해 머잖아 토종 소나무가 전멸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나무 구명 차원에서 소나무 사진 찍기에 나선다. 오대산, 설악산을 거쳐 지금은 울진 소광리 금강송 사진에 몰두하기 위해 울진에 작업실을 차렸다.

2008년 대구에서 소나무 사진전과 사진집을 발간하고, 지난해 6월 서울 조선일보 갤러리에선 사진작가로선 처음으로 소나무 걸작전을 개최했다. 지난해 그동안 찍은 명 소나무 사진을 모아 '솔향을 찾아서' 란 사진집(시사출판 간)을 펴낸다. 현재 그의 대작 소나무는 국회의사당, 통일부, 서울지방경찰청, 대구시청·경북도청 등 다수 공공기관에 500여점 걸려 있다.

                                                                                   영남일보 이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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