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2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와서 지어미에게 무슨 혈액형인지 물었다. 혈액형에 관한 수업을 받은 모양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아들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혈액형 B형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인 내가 A형이고 아내가 O형이니 B형이 나올 수 없다는 계산이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가서 두 번이나 혈액형을 체크한 것 같다.

예민한 사춘기의 정서로 온갖 상상을 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가끔 농담삼아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던진 말을 곱씹어 보았으리라. 무엇이 오류였기에 가족에 대한 깊은 믿음이 무너졌을까. 아내의 혈액형은 O형이다. 병원에서 수혈을 두 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아버지인 내 혈액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건강 체질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병원에서 수술받은 적이 없고, 수혈을 받은 사실도 없다. 그러나 아들의 질문에 검증받은 증거를 들이댔다.

“내 혈액형은 초등학교 때 검사를 받고 A형으로 알고 있다. 병역 신체검사에도 공란에 A형이라고 썼어. 아무 문제없이 그대로 통과되었거든. 소방 공무원으로 임명될 때에도 마찬가지야.”

나의 인사기록 카드에는 A형이라 기록되어 있다. 공직 생활 중에도 신체검사를 수없이 하였지만 그때마다 자동으로 A형이라고 썼다. 누가 혈액형을 물으면 나는 A형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피의 수난사를 쓰고 있는 둘째 아들의 고민을 보다 못한 아내가 나를 보고 혈액형 검사를 다시 해보라고 한다. 더 있으면 아이가 잘못될 것 같아 검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50이 다되어서 혈액형 검사를 하기 위하여 보건소에 갔다.

경험명제는 참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 잘못이었다. 보건소에서 나는 AB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순간 머리가 멍하였다. 오류를 참이라 믿고 사는 동안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수혈을 받아야 했다면 어땠을까. 내 안과 밖에서 쉼 없이 풍화하는 세상 풍경만큼이나 사는 일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기록 카드를 정정하였다. 신분증도 A형을 AB형으로 고쳤다. 직장 동료가 나의 혈액형 정정 사실에 대하여 이제라도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다며 축하한다고 하였다.

오해의 사실을 안 집사람도 AB형은 머리가 좋다고 말하며, 우화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결국 아들이 내 혈액형을 가르쳐 준 셈이다. 사실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A형으로 알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A형, B형, AB형, O형 다 각각이다. 첫째 아들 종근이는 A형인데, A형은 규칙적인 틀에 맞추어 행동하는 준법정신이 강하다. 둘째 아들 종훈이는 B형인데, 타인에게 간섭당하거나 일정한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아내는 O형의 특성답게 현실주의자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AB형인 나는 침착하고 안정된 A형의 성격과 변덕스러운 B형의 성격이 공존하는 것 같다. 혈액형을 가지고 성격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을지 모르지만, 대충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혈액형을 너무 맹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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