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와 할머니


                             황지희 (울진중 2학년)


제 멋대로 벌어진 갈비뼈 틈사이로
가느다란 바람을 뽑아내는
고물 선풍기가
또다시 관절염이 도지는지
날갯짓을 할 때마다
또각또각
신음소리를 낸다

무덥고 긴 세월
자식들의 바람 되어 살아와
허리 굽고 무릎 시려 앓아누운
우리 할머니처럼

마당 한가득 붉은 고춧물을 들인 뒤
고구마 순을 다듬고
애호박 두 덩이
열무김치 챙겨
우리 가족 가져 갈 보따리 하나 만들어 놓고
할머니가 자리에 누우셨다

앞뜰의 봉숭아 꽃 처럼
곱던 시절 지녔을 우리 할머니
불거진 뼈 마디마디
모진 인생이 엉겨 붙었다

할머니 무릎 위에 파스를 붙인다
선풍기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쏴-한 냄새
내 손길이 한 점 바람인 듯
어휴 시원하다 하시더니
고물 선풍기 앞에 등 돌리고 누워
또 신음소리를 내신다

무더운 여름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아이구 아이구
또각또각
시골 방 두 늙은이의 앓는 소리가
처량한 판소리의 한 자락처럼
구슬프게 어우러진다


                                  ☆제2회 울진문학상 공모전 중등부- 입선작
                                  울진신문사 주최/ 동아베스텍(주)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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