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5


도회지 사람들의 귀농귀촌은 충분한 기간을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퇴직과 함께 시골살이를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는 지인들을 많이 본다. 새로운 정착 방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퇴직을 앞두고 귀농귀촌 체험이 있었다. 연수생 44명은 지난해 늦가을 서울인재개발원을 출발하여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에 도착했다. 귀농인 최영수씨가 운영하는 다정다반에서 산채정식 식사를 했다. 식재료는 농가에서 자체 생산하여 밥맛이 좋았다.

최영수 농가는 서천군 농가맛집 1호로 지정되었다. 농가맛집이란 우수농가를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집이다. 최영수씨는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다가 1997년 IMF를 만나 인원 감축바람에 밀려 퇴사를 하고 이곳에 귀농했다.

밭 3,000여 평에는 오가피와 채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나무로 지은 30평 남향집에 기와를 올려 뒷산과 어우러져 운치가 있었다. 넓은 정원에는 소나무와 일년생 꽃들이 반겨주었다. 나무의 수종과 관리 상태를 보니 주인의 정성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는 된장 고추장을 가공하는 가내 공장도 가지고 있어 성공한 귀농이었다. 부부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데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음식을 장만 하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단다.

자리를 이동하여 서천군 귀농지원센터 강의실에서 정경환 사무국장의 서천군 소개와 지원활동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1966년부터 2013년까지 귀농회원은 400명,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농가도 더러 있어 더 많은 농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농촌생활이 적응되지 않아 실패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귀농은 3년 이상 충분한 계획과 검토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귀촌한 최광진씨는 7년 전, 군산대학에서 공직 생활하다가 명예퇴직하여 회원 20명과 함께 협동조합법인을 설립하여 농산물직거래를 한다고 했다. 그는 농촌생활이 좋아 허름한 농가를 수리하여 혼자서 생활하고 있었다. 가족은 서울에 있고 주말에 오르내린다고 했다.

밭 600평을 구입하여 채소를 가꾸는데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아마도 연금을 받기 때문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서천군에서 특이한 점은 회원 7명이 통나무를 활용한 목조 가옥을 짓고 있었다. 서초면 후암리 통나무로 집을 짓는 현장을 방문했다. 안철희씨가 몇 년 전에 구입한 땅에 건축면적 30평으로 짓고 있었는데 집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남향으로 기와를 올린 집은 우아하게 보였다. 그도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다 이곳에 밭 900평을 구입하여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평당 건축비는 얼마나 듭니까?” 그가 말하기를 “목수인 형님이 거들어 주어서 300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보통 400만원 정도 듭니다.” 라고 했다.

최근 5년간 서천군에 귀농귀촌은 410세대였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선물하고 싶어서 농촌에 발을 들여 성공한 젊은 세대도 있으나 대부분이 직장을 퇴직한 60대이다. 이중 10% 정도인 40여세대가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회지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역귀경은 농촌에 정착한지 2, 3년 된 세대가 제일 많다고 하는데 가지고 온 돈도 다 떨어지고 지속적으로 일정한 소득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귀농귀촌은 한정된 농촌 일자리, 농산물 과잉생산에 대한 판로 문제, 중국을 비롯해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에서 농산물 수입에 대한 영향도 고려돼야 한다. 

나는 고향 울진 봉평에서 여러 해 농사를 지어 보았기 때문에 농촌생활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농사짓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원더풀 라이프를 꿈꾸며 햇빛 찬란한 길만 펼쳐질 줄 알았던 귀농귀촌 생활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초반부터 삐걱인다. 

푸른 초원에서 집을 짓고 사는 낭만적인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농사를 짓고자 한다면 1년 정도 그 일을 해 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글쓰기 습작시기처럼 모든 인생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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