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바르게살기운동본부중앙회 부회장


연말연시가 지났지만 설날을 지나지 않으면, 진짜 새해를 맞이한 것 같지 않은 것은 오래 몸에 밴 문화일까? 설이 다가오니 어린 시절 부푼 기분과 달리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든 탓일 것이다.

엄마는 치매가 와서 17년간 힘든 노년을 보내셨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 2년 반은 고관절 골절로 요양원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치 않던 군립 노인복지센터 목욕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종사원들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였다.

엄마의 요양원 생활 2년 반 동안 나는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 많은 시간 말동무를 해드렸다. 그리고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과일즙과 소고기 갈은 반찬 같은 것을 직접 준비하여 요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치매가 심해서 아무도 기억 못했지만, 엄마는 외아들인 내가 요양원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에 익어 그러는 지 단박에 알아보고 박수치고 기뻐하며 내 얼굴을 끌어다가 엄마의 볼에 비벼 데곤 했다.

엄마의 요양원 생활은 내게 참으로 안타까운 세월이었다. 하루 24시간 모두를 함께 못해드린 죄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말이나 공휴일은 어떤 경우라도 하루 종일 요양원 엄마 곁에서 최선을 다했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기 전 15년 치매세월에는 안방 옆 안사랑 방에 계셨고, 내가 서울 나들이할 때는 고맙게도 늘 아내가 옆에서 함께 해주었다. 지금도 엄마가 사용하던 방은 비어있는데, 새벽에 일어나면 엄마 방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엄마를 봉양할 때, 생활습관이 다. 어떤 때는 엄마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내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아직도 엄마의 요양원 시절 얼굴사진이 있고, 가끔씩 마음이 힘들 때 꺼내서 보곤 한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지금도 엄마가 안사랑 방이나 요양원에서 날 기다리시고 계시는 것 같다.

최근 신문에 요사이 젊은 세대는 부모 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설문조사 응답이 50%가 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씁쓸하다. 그것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군대 간 아들이 자기 엄마를 살해했고, 그런 유사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파렴치한 범죄가 매우 자주 보도되고 있다.

기성세대로서 깊은 성찰(省察)을 해야 할 대목이다. 생각컨대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실패한 세대다. 다음 세대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성교육에 실패했고(가정교육, 공교육 모두), 또 우리는 역사교육을 등한시 한 세대다.

역사교육을 등한시 한 대가 역시 미래에 큰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는 먼 미래에 교육에 실패한 세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고, 당장 우리 노후에 그 대가를 톡톡히 받으면서 외로운 노년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을 자초한 ‘낀 세대(우리가 부모는 봉양했지만, 우리는 봉양 받지 못하는 세대)’다.

나는 효(孝)에 대해 안타까움과 부족함이 많다. 당연히 효자는 아니지만, 불효는 그리 안 한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 노년에 정말 최선을 다해 잘 해 드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난 엄마와 아버지로부터 금지옥엽, 세상 어느 자식 보다가 지극한 ‘부모사랑’을 받고 컸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묘한 것이다>. 아직도 내 볼에는 엄마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설날 같은 명절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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