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10)


       (전세중 재경 죽변출향인)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등창이 났습니다. 점점 커지더니 주먹만큼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내 등을 보시더니 옛날에는 등창이 나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면서 혀를 찾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다는 말에 겁이 났습니다. 

얼음판같이 번들번들한 등짝에 아버지는 치질 고치는 약물을 주사기에 넣어 빨간 등창을 푹 찔렀습니다. 얼마나 아팠던지 펄쩍펄쩍 뛰다가 비명을 지르며 뒷산 대나무 숲으로 뛰어 올라 갔습니다. 
 
구름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빛, 푸른 대나무가 노랗게 보였습니다. 면허증도 없는 아버지는 등창을 주사기로 찔러놓고 “잘 나을 거야, 괜찮을 거야” 허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 약은 살을 썩혀 문드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등창이 화끈거리고 욱신거리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뒷산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머니는 장 손자가 염려되어 밤새 이마를 짚어주었습니다. 나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토끼처럼 눈만 껌뻑껌뻑 거렸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등에서 검은 피고름이 줄줄 흘려 내리더니 다 나았습니다. 무면허 의사인 아버지가 내 병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2년간 다른 환자를 돌봤습니다.  

한때 아버지는 치질로 고생했습니다. 아버지는 훤칠하고 미남인 돌팔이 치질 전문가에게 당신의 치질을 고치자 재미를 붙였습니다. 돌팔이 의사 꼬드김에 넘어가 큰 소 한 마리를 팔아 치질 고치는 기술과 약물을 전수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가 큰 재산이었습니다.

소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볼 생각도 하신 것 같았습니다. 돈을 벌기는커녕 주위 사람들에게 치질을 공짜로 고쳐 주었습니다. 지인들과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이 의술의 해택을 보았습니다만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환부가 오래되어 못 고치고 슬픔에 잠겨 돌아간 환자도 더러 있었습니다. 

치료 중에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항문 수축이 잘 안되고 통증이 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환자가 주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관리를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치료가 끝날 때까지 따스한 물에 좌욕을 자주 해 주어야 하는데 소홀히 했다는 것이지요. 소동은 몇 달이 지나자 잠잠해졌습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치질에도 암놈이 있고 수놈이 있다나요. 약물로 치료가 불가능한 치질도 있다고 그랬지요. 노란 액체를 치질에 맞으면 며칠 지나 뿌리 채 빠져 완쾌 되었습니다. 요즘 병원에서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없이 지나간 것이 참 희한했습니다. 

아버지는 의사가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었습니다. 자신을 얻은 아버지는 치질 고치는 약으로 나의 등창에 시술을 한 것입니다. 그 실험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습니다.
 “니는 그 주사 아니면 죽었데이” 일생동안 자랑하며 그렇게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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