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바살협중앙회 부회장


이번 겨울에는 아침식사 때마다 작은 즐거움이 있었다. 홍시를 내려 냉장고에 저장했던 지 사랑하는 아내가 아침식사 후 후식으로 권했다. “웬 홍시는?” 물으니, “맨날 나다니니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지” 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대문 밖 텃밭에 작은 감나무가 있는데, 늘 고양이 등살에 제대로 크지 못해서 보기가 딱했다. 그런데 지난해는 감 수확에 적합한 기후였는 지 나무마다 주렁주렁 감 풍년이 들었다.

늘 역마살이 끼여 다니는 데 정신없는 터라 감나무에 관심조차 없어서 감을 얼마 수확했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껍질을 벗겨 먹는데 귀찮아서 잘 먹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익숙해져가니 하나둘씩 먹기 시작했다. 겨울에 먹는 홍시의 시원함과 달콤한 맛을 느끼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새해 들어 1월 하순이 되니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홍시가 다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홍시가 바닥이 나지 않았나?” 하니, 아내는 조금 남았다고 했다. 겨울 내내 그 홍시를 먹을 때마다, 라훈아 가수의 ‘홍시’ 라는 노래를 되 내었다. 삼년 전 세상 떠나신 엄마 생각이 났다.

홍시를 먹을 때마다 지난 청년시절도 떠올랐다. 대학 수석 졸업 후 꼴 난 자존심에 남의 밑에 들어가 죽어도 직장생활은 하기 싫었다. 시골집에 내려와 아버지께 땅 좀 팔아 사업자금 대 달라고 보체면서 빈둥빈둥 놀던 시절이 있었다.

막무가내로 대학 1년 때 강제로 결혼한 지금 사랑하는 아내와 할 일 없어 세월 보내자니 기가차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있는 수많은 땅에 사과나무나 심자” 라고 한 뒤, 우연찮게 시작한 것이 과수원이다.

과수원 일이라는 것이 밑도 끝도 없다. 일 년 내내 일이였다. 뭘 하면 끝장 보는 성격이라 열심히 일을 했다. JC활동 이후 사과농사를 접어서 그렇지, 지금도 사과농사에는 일가견(一家見)이 있다. 요사이도 길옆에 잘 가꾸어진 과수원을 보면 차를 세워 바라보곤 한다.

그 시절 과수원 일을 할 때마다 느꼈던 묘한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있다. 견디기 힘든 여름철이나 엄동설한에 실컷 일한 후 샤워를 하고 사랑방 책상에 앉으면, ‘노동의 신성함이 이런 거로구나’ 하며 느꼈던 무상무념(無想無念) 말이다.

이상스레 이번 겨울 아침식사 후 홍시를 먹을 때마다 수없이 그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 사는 행복이 따로 없는 듯하다. 자그마한 것에서의 즐거움이 곧 행복이 아닐까? 가을햇살에 영글어가던 감을 따서 홍시를 내려준 아내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작은 것의 즐거움이다. 올해도 다시 대문 밖 감나무가 많은 감을 달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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