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돌만 남부지사장.후포역사연구회장

[울진칼럼]▨백암온천은 영천(靈泉)인가? 조선조 광해군(1610년)에 기자헌(奇自獻)이 상소를 올려 백암온천에 왜 왔을까? 선조가 세자 광해군(光海君)을 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강력히 반대하여 광해군을 즉위 시키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1600년 부제학이 되었다. 1604년 대사헌이 되고 우의정,좌의정으로 승진하였으며, 1614년 영의정에 발탁된 인물이다. 그의 상소문 내용을 보면 “자신의 풍질(風疾)이 심하여 왼쪽 수족이 마비되어 항상 물에 들어가 있는 듯 합니다. 비록 겨울이긴 하지만 온천욕은 얼음물에 목욕하는 것과는 다르오니 오래도록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면 반드시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전혀 손을 쓸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서 목욕하면서 차도를 바라는 것이 낫겠기에 부득이 가서 목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상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빨리 휴가를 주도록 허락하여 몇 달 간 다녀오도록 해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기자헌의 상소문에서 보듯이 백암온천이 풍질(風疾)에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조선실록에서 온천욕을 민간요법으로 거론한 것은 백암온천이 조선실록에서 최초의 기록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병명을 거론한 것 자체가 백암온천으로서는 가치가 있는 기록이다. 상소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암온천은 풍질에 효험이 있다는 것을 왕실 자체에서 인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욱더 값진것이라 하겠다. ▨백암온천은 시(詩) 자체가 처방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백암온천은 신비스러운 영천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이러한 일말의 내용들은 조선시대의 문학작품속에서 백병에 좋다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시가 있다. 우리나라 8대 문장가 중에서 서거정이 쓴 평해군 8영중의 「탕목정」, 이산해의 「온탕정」, 성혼의 「탕목정」이 있다. 특히 서거정의 시에서 “듣는 말엔 한 줌의 물로 오랜 병이 낫고, 두 겨드랑이로 풍기면 뼈도 신선이 된다”고 상징적으로 도가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또한 이산해는 유배시절(1592~1595년) 평해땅에서 온천을 하면서 시작(詩作)생활을 왕성하게 하여 무려 480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백암온천을 위하여 천금같은 작품을 남기고 갔다. 그 내용중에 “백암산 아래 온천이 있어 한 표주박의 물로도 백병이 낫는다네. 이제부터 자주가서 몸을 씻어 이 늙은이 묵은 시벽(詩癖)을 치료해 봐야지”하고 이와 같이 읊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정신적 세계와 육체적 고질을 온천을 통하여 동시에 치유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늙었지만 문학의 세계를 온천의 기(氣)를 통하여 이루려는 의욕을 엿볼수 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끝으로 성혼의 시에서는 신령(神靈)한 온천수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 3편의 문학작품 속에서 백암온천의 신비스러운 부분을 잘 나타내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한편의 시(詩) 속에서 허준의 동의보감을 능가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온천을 통하여 정신적 세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학의 딜레마를 극복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온천욕은 더욱 가치가 있다. 이제까지 정리한 글은 조선 초 중기의 온천과 민간치료의 관계를 설명한 글이다. 기자헌과 이산해는 백암온천을 다녀간 후 모두 영의정에 등용된 점을 미루어 보면 정치적, 문학적, 재충전의 기회를 온천을 통해서 이루어냈다고 한다면 무리일까? 우리는 기(氣)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온천욕의 오묘한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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