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역사와 문화 ... 5편 이 규 상


0 죽변 곶의 등대 - 동해안에서 유인有人등대로는 포항 등대가 1908년 12월20일 처음 점등되었고 두 번째는 죽변 등대로서 1910년 11월 24일 점등되었다.

이는 울릉도와의 입출항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빠른 설치였다. 죽변항은 울릉도와의 해상교통은 물론 어업의 전진기지일 뿐 아니라, 부산 울산 원산 등지와의 물류수송 항구이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매봉산, 장재산, 쇠치봉 등지의 울진소나무(황장목)를 벌채하여 배를 만드는 데 중요한 부분인 바닥재로 사용한다면서, 죽변에서 부산으로 실어 나르던 화물선을 보아왔다. 죽변 부두에는 배 만들고 수리하는 크고 작은 조선공장이 많았었다.

결국 울진소나무(황장목)를 이용하여 이사부가 배를 만들고 목조사자를 만들어 죽변항을 출발했을 것이며, 일본의 국보1호였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울진소나무(황장목)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979년 평해 월송리 출신 재일교포의 모임인 금강회 김00 선생과는 서신과 전화로 자주 연락했었다. 그가 복사해 설명을 달아서 보내 온 일본 법륭(광륭)사 사찰기록 일체를 문화공보실 후임자에 인계했다.

거기에는 일본의 국보1호였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재료가 울진소나무(황장목)엿다는 설명이 있었고, 신라 초 울진사람 진秦씨(하타 : 하단波旦)가 일본에 건너가서 문물을 전했던(밥 짓기, 수저이용하기, 술 담그기 등) 내용도 담겨 있었다.

0. 독도는 울릉군에 속하여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峰島 또는 가지도可支島라 불렸다. 울릉도가 개척될 때, 입주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돌섬이라고 하다가 이것이 독섬으로 변하고 이어서 독도로 불리었다 한다.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울진현에 속해 있었으며,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구 강원도지, 경북도사, 구 울진군지 울릉군 연혁과 세종실록지리지 성종실록, 숙종실록 등의 문헌에도 그 사실史實이 남아있다.

신라 지증왕13년 하슬라 군주 이사부장군이 고구려 울진땅 파단현波旦縣 이었던 우산국을 정벌함으로 신라영토로 편입이 되어 세종실록 8권8책(1454년 단종2년) 권153 지리지의 강원도 울진현조에 그 부속 도서로서 우산도와 무릉도를 열거하고, 이들의 위치를 우산(울릉) 무릉2도(독도)로 기록하고 있다.

즉 <우산무릉이도于山武陵二島, 재현정동해중在縣正東海中, 이도상거불원二島相去不遠, 풍일청명風日淸明, 즉가망견則可望見>이라고 되어있다. - 우산과 무릉의 두섬이 현(울진현을 말함)의 정동방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바라 볼 수가 있다.

더 확인할 필요가 없이 울릉도는 예부터 울진의 속현이었고, 정 동쪽에 있어서 행정지도의 교통은 죽변항 연락선이 그 기능을 담당했었다. 1693년 안용복은 일본 에도막부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증하는 서계(인증서)를 받아냈다고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죽변항은 아주 옛부터 울릉 행 뱃길의 전초기지였고, 어업의 전진기지였으며, 물동량 수송항구로 이용되어 왔었다. 결론은 울릉도는 울진에 속한 땅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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