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칼럼> 대구 정토사 주지 수성스님


                   수성 스님
세상에는 드러내어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뜻 깊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출가자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세상을 밝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화두를 가슴에 품고 절집에서 살면서 내가 할 일 찾아보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경전의 복원이다.

출가하여 부처님 법을 배우면서 처음 접한 목판본 경전들은 마모(磨耗)가 너무 심해 글자를 잘 알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독해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때 문득 이 경전들을 복원해야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지금까지 전래되어온 고려대장경 목판본은 과거 당시의 인쇄술이다.

지금 시대에 이러한 한문 경전들이 낡고 어렵다고 접어두고 있는 실정이다. 보고 안 보는 것은 현 시대에 살고 있는 개인의 일이겠지만 마모된 경전, 즉 법보(法寶)를 복원해 두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먼 후대에 큰 누가 되지 않겠나 생각도 하면서, 경전 복원 불사에 임하고 있다.

처음에는 붓글씨로 한 자 한 자 베껴 써야겠다고 마음 먹고 서실에 가서 붓글씨를 익혀서 시도해 보았으나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잘못 쓴 글씨를 고치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발달된 현대 인쇄술로 복원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타자기로 한자를 옮겨 쓰기 시작했다. 경전 복원의 큰 뜻을 품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 컴퓨터라는 대 발명품이 세상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경전 복원 불사가 어언 30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강본교재(講本敎材)인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치문((緇門)>, <사집(四集)>, <사교(四敎)>, <대교(大敎)>, <법화경(法華經)>, <경덕전등록(景德傳燈綠)>,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비롯해 <화엄경(華嚴經)>,  <아함경(阿含經)>, <유마경(維摩經> 대열반경(大 涅槃經) 등 고려대장경 1/4의 분량에 해당하는 경전들을 그 옛날 목판본 원형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시켜 복원하였다.

복원한 경전 가운데 사교(四敎) 전부만 한장본(漢裝本)으로 그 특징을 살려서 제본하고, 나머지 일부는 책당 1,100여 쪽 내지 1500여 쪽의 양으로 축소, 양장본으로 제본하여 13권(책)을 출판하였다.

지금 뒤돌아보니 실로 어머어마한 시간과 정성이 들었다. 내가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계승하고, 광도인천(廣度人天)의 본원(本願)을 이루어 후학들의 경전 학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영구보존과 함께 후대에 유통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히 이 땅에 머무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더욱 발전된 인쇄술로 이것을 원형 그대로 복원 정리해서 후대에 물려주어야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그 어떤 일보다 보람되고 사명감을 느낀다. 이것은 그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이기에 시작은 하였으나, 그동안 실로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으로서 시간과 체력의 한계점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온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몸져 눕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 대구 정토사 주지 수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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