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14


       전세중 재경 죽변출향인
올해는 일찍 꽃을 피웠다. 기온이 갑자기 높아진 날씨 탓인가. 겨우내 홀로 다져온 뿌리로부터의 고독을 견디지 못했나, 꽃샘바람이 깨울 틈을 주지 않았다. 개나리가 길가에 늘어져 노란 웃음으로 봄을 만끽하고 있다.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봄에 피는 매화, 여름에 피는 백일홍, 가을에 피는 국화, 나는 겨울에 피는 인동초를 좋아한다. 꽃들은 숨죽인 채 겨울을 보내다 따뜻한 봄날에 일제히 만발하건만 인동초는 어쩌자고 혹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기어이 피는 것인가.

우리들의 삶을 꽃에 비유 하자면 대부분 이른 봄에 피는 매화가 되려고 한다. 차가운 눈과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홀로 피는 인동초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인동초는 어떤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는 굳센 절개를 지니고 있다. 옛 어른들이 시문에 인간정서를 표현할 때 물망초, 상사초와 함께 즐겨 썼던 초목 가운데 하나이다. 북풍한설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곧은 기개로 표현되었다. 선비 정신이라고 할까. 혹독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참된 길을 걷고자 하는 올곧은 선비들의 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여정 가운데 악과 독은 우리를 쓰러뜨릴 기회를 노린다. 악에게 삶의 행복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악의 그늘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동초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두발이 없는 육상선수 피스토리우스, 오체불만족을 쓴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인동초 처럼 견디고 살면서 불편한 몸으로 정상인에게 용기를 준다. 그들은 마음의 등불을 무엇으로 켤까.

히로타다는 선천성 사지절단으로 팔다리가 없어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의 다 자란 팔다리는 고작 10cm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팔다리로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보통사람과 똑같이 교육을 받은 그는 자신의 신체가 지닌 장애를 결코 불행한 쪽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초개성적'이라 생각하며 장애는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옮겨 독자들에게 용기를 나눠주고 있다. 

건강하다는 것은 육체가 건강한 사람일까.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울적하고 어두운 인생살이를 보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팔다리가 없는데도 매일 활짝 웃으며 소리 높여 외친다. “장애가 있긴 하지만 나는 인생이 즐거워요” 

당당하게 행복을 전도한다. 그의 용기는 설산에서도 굴하지 않는 푸른 인동초 같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몸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어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말한다. 불편한 몸으로도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생명의 신비에 가깝다. 그래서 땀과 눈물로 힘들게 일구어낸 꽃밭은 더 향기롭다. 삶은 결과의 열매보다 과정의 역경이 더 값지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삶은 어떤 꽃으로 비유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움 앞에서 나는 얼마나 용기가 있었는가. 잘못된 가치관을 잣대삼아 남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나의 허물을 숨기기에 바빴다. 조그만 일에도 쉽게 굴복하고 포기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가시덤불을 피하여 쉬운 길로만 가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왔다. 뒤돌아보니 향기로운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이익과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덥석 손을 잡아버리는 얄팍하고 타산적인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렇지만 나의 육신은 아직 건강하다. 시퍼런 강이 앞을 가로 막을 지라도 건너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강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면서 온 몸으로 비늘을 세워 보리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모든 시련을 이겨내는 인동초를 스승으로 삶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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