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중의 세상 사는 이야기 > 30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이웃하고 있는 나라와 국경의 개념이 없는 듯하다. 유럽이라는 큰 틀이 하나의 국가이고,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는 하나의 도시라는 생각이 다.

차량은 아무런 제지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경을 지키는 군인도 없다. 남북한이 총부리를 겨누며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이런 유럽 연합은 18세기 생피에르의 유럽 영구평화 방안, 루소의 국가연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2013년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28개국이 되었다.

28개국 회원국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서로 적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면서 30년 전쟁을 치뤘다. 상호대립과 파괴의 역사로 얼룩진 유럽이다. 그런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평화정착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유럽연합을 이룬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판문점과 마찬가지로 분단 독일 시절 상징으로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았다. 18세기 축조된 이 문은 히틀러의 나치군이 군사 프레이드를 벌이던 곳이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연합군이 팡파르를 울린 곳이기도 하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 문에 모인 청중 앞에서 베를린 장벽을 향하여 외쳤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여, 이 장벽을 허물어주시오." 그리고 29개월 후에 장벽이 무너졌지만,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독일이 통일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통일의 결정적 계기는 헝가리가 국경을 개방한 것이었다.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개방하면서 수많은 동독사람들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넘어 헝가리로 들어온 후,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동독의 붕괴는 시간문제가 되었다. 이렇듯 독일통일의 중요한 요인은 사회주의 빈곤에 염증을 느낀 동독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어떤 제도이던 간에 인간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회주의는 사회적 불의를 지적할 수 없는 풍토 속에 바뀌어야 하는 것은 바꾸지 않고, 겉모양만 변화시킨다. 자본주의가 완벽한 사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무한경쟁과 이윤추구로 인한 불평등 때문이다. 복지국가로 나아가야겠지만 한국 풍토에 맞는 제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베를린에는 시청 서북쪽 베르나우어가를 따라 200m 남짓 장벽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장벽 조각을 기념품 삼으려고 망치와 정으로 쪼아내 철근이 다 드러났다. 동네 복판을 장벽이 가로질러 분단과 이산의 아픔이 컸던 곳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졌다. 

장벽을 넘다 사살된 동독인이 얼마나 많았던가. 장벽이 세워진 이후 28년 동안 5천 명의 동독 사람들이 장벽을 넘는데 성공했고, 체포된 사람도 5천 명에 이르렀다. 192명은 장벽을 넘는 순간 사살되었다. 장벽 동쪽을 지배했던 것은 속박이요, 서쪽에 넘쳤던 것은 번영이었다. 155km 베를린 장벽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콜 수상은 동독 방문의 첫 대중연설에서 독일 민족의 자주권행사가 통일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민족의 자주권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독일은 통일 이후 유럽중심국가로 거듭났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와 같은 동 유럽 국가는 개혁 개방을 통해 다른 국가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남북이 분단 된지 70년을 맞이하였다. 우리도 독일처럼 자주권을 가지고 통일할 수는 없을까. 남북문제에 환상에 젖어서도 안 되지만, 지레짐작하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통일 비용이 독일보다 2.5배가 더 든다고 해서 주저앉아서도 안 될 것이다. 드러내 놓고 통일을 외치는 방법도 있으나, 조용히 대화로 추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가 한 번 더 웅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는 만주로 몽고로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야 한다. 불과 몇 시간 거리를 막는 분단 벽, 아직은 높아 보이지만, 독일에서 허물어진 이념의 벽을 보았듯이 무너지지 않는 벽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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