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요즘 한창 극장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영화 사도(思悼)에서, 영조(英祖)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내전에 들기 전에 양쪽 귀를 씻고, 씻은 물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 쪽으로 쏟아버린다.

영조의 이런 유별난 행동은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閑中錄)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어 사실인 듯하다.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에 의하면 귀씻이(洗耳)의 유래는 소부(巢父) 허유(許由)의 기산영수(箕山穎水) 고사로부터 시작된다. 동양의 유토피아 요순시대, 요임금이 허유의 인품을 높이 사 임금자리를 선양(禪讓) 하려하자, 허유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천(潁川)에다 귀를 씻고 기산(箕山)에 은거하였다.

한술 더 떠 소부는 그곳을 지나다가 타고 가던 소가 물을 먹으려하자 허유가 귀씻이(洗耳) 한 물이라 하여 상류로 소를 몰았다고 한다.

『귀는 왜 줄창 열려있나』라는 소설이 있다. 2007년에 작고한 김국태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이다. 김국태 작가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김근태 고문의 형이기도 하다. 소설 내용은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공석이 된 편집실장 자리를 놓고 직원끼리 벌이는 암투를 묘사했는데, 그 뒷면에는 인간 군상들의 차마 듣기 부끄러운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한다. “냄새가 싫으면 코는 잠시 숨을 멈출 수 있고, 보기 싫은 것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면 되는데, 귀는 왜 주구장창 열려있어서 듣기 싫은 소리까지 다 들어야 하나”

사회초년생 시절 출판사 편집실에서 일할 때, 편집장님을 따라 만리동고개 어느 술자리에 갔다가 김국태 작가님을 뵌 적이 있다. 선생은 소문난 주당답게 술자리도 엄청 길었다. 새파랗게 젊은 내가 필름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편집장님의 말에 의하면 老작가님을 붙들고, “저도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소설가가 되겠습니다.”고 거푸 주정을 부렸단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자다가 이불을 걷어찬다.’ 그날 아마 김국태 선생은 밤새도록 귀를 씻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귀로 듣던 소문은 이제 인터넷에서 텍스트나 이미지 또는 동영상으로 본다. 귀 대신 눈을 씻을 판이다. 여전히 줄창 열려있는 귀는 소문 대신 도시의 소음이 괴롭힌다. 그러다보니 지금 사람들의 귀는 늘상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닫혀있다. 닫혀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심지어 귀에서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어폰이 때문이다. 그 소리도 듣기 싫어 귀를 더 닫아버린다.

이를테면 요즘 사람들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이어폰의 음악으로 세이(洗耳)하느라 닫아버린 셈이다. 그러나 몸이 아직 자연의 소리와 더불어 살았던 시대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면 답답해서 못 견딘다. 어른들도 뽕짝으로 세이(洗耳)는 해야겠고 그러다보니 주위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허리춤 효도라디오 볼륨이 날카롭게 쨍쨍하다. 서울 산책로는 그 때문에 다툼이 잦다. 이래저래 귀가 괴롭다.

울진을 갈 때마다 불영사는 꼭 찾아간다. 소음에 찌든 귀를 제대로 씻기 위해서다. 한번은 일행들을 인솔해서 갈 일이 있었는데, ‘맑은 물에 귀 씻어 인간사 아니 듣고, 푸른 소나무 벗삼아 사슴과 한 무리라(洗耳人間事不聞 靑松爲友鹿爲群)’는 시구를 읊조렸더니 모두가 더 없이 잘 어울리는 곳이라 좋아했다. 전국에 세심정(洗心亭)은 숱하게 많은데, 세이정(洗耳亭)도 하나 쯤 있으면 명물이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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