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34)


전세중 시인, 재경 죽변출향인
생활용품의 수명은 어떻게 환산해야할까. 함부로 버리는 습관이 환경 파괴범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 아닐까.
 
오랜만에 신발장을 정리하다 보니 신지 않는 신발들이 비좁은 신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운동화 한 켤레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구입한 지 십여 년 된 것 같은데 밑창 부분의 접착이 떨어졌을 뿐 아직 멀쩡했다. 수선을 하면 더 신을 것 같아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
 
“오래신은 것 같은데 버리세요. 요즘 운동화 수선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 구두쇠 근성을 나무라는 아내의 말에도 몸에 굳은 삶의 철학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신발을 들고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고무 접착제로 수선하면 이삼 년은 더 신을 것 같아 구입했던 백화점에 맡기기로 하였다. 점원에게 신발을 보여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2003년에 구입 하셨네요, 본사에 보내 수선하겠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수선비에 대하여 물었더니 무료이고, 이주일 후 연락을 하겠다고 말하였다. 한때 아나바다 운동으로 자원을 아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쓸 만한 물건도 버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확인이라도 하듯 한마디 던졌다. 

“그것 봐, 가져오길 잘했지.” 
아내는 맞다고 수긍하며 꼬리를 내렸다. 신발도 내 선택에 기뻐하지 않았을까. 쓸 만한 물건을 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 서비스에 내 기분도 좋아졌다. 신발을 어떻게 수선하여 줄까 어린아이처럼 기대하였다. 얼마 후 백화점에서 전화가 왔다. 

“신발이 오래되어 수선이 불가능합니다. 신발 찾아가세요.” 
전화를 받는 순간 맥이 풀렸다. 신발 수출국인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 간단한 운동화 수선도 못한단 말인가. 나는 아내의 판단이 옳았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신발은 신든, 안 신든 십여 년이 되면 수명이 다한다고 종업원은 말했다. 나의 절약 정신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 시대였다. 

몇 해 전 ‘천국의 아이들’ 이란 영화를 본 일이 있었다. 남매가 헌 운동화 한 켤레를 교대로 신고 학교에 등교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운동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운동화는 생활용품이 아니라 자존심이고 가난의 슬픔까지 달래주는 친구였다. 가난 속에서도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행복은 모든 것이 풍부한 가운데서만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멀쩡한 가구나, 옷가지, 전자제품, 신발을 내다버린다. 우리 집도 이사를 하면서 아내의 성화에 이십년 된 장롱을 새것으로 바꾸었다. 아내와 내가 마음을 조율하며 살아온 지 삼십 여년이 지났지만, 가치관의 차이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몇 번 이사를 하면서 장롱에 흠집이 있긴 하나 멀쩡했다. 아마 그 장롱은 지금쯤 소각장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신혼의 때가 묻은 소품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씁쓸한 내 마음을 아내는 모를 것이다. 아내가 새 것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에게 꾸며진 행복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탓이리라. 

반대로 내가 옛 것을 버리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것을 사기 위해서 선택하고 관리하는 것에 필요 이상의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아닐는지. 내 삶의 철학은 생각을 깊게 하되 생활은 단순하게 하자는 것이다. 맑은 유리컵에서 자라는 양파뿌리 같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삶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멀쩡한 것을 버리는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사고는 함께 지켜야 할 환경을 오염시키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생활용품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오래된 물건일수록 애정이 남아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노스텔지어의 삶처럼 물건은 그 이상의 정서를 전해준다. 힘들 때 오래된 물건만큼 미소 짓게 하는 친구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낡은 운동화를 들고 서성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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