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산돌교회 이학규 목사



“한국교회가 변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펼친 신문의 헤드라인 기사였다. 눈이 번쩍 띄였다. 무슨 기사인가 자세히 보니 한국교회가 오늘부터 우리나라의 장애인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나는 충격에 빠졌다. 눈을 크게 뜨고 그 기사를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하루 종일 신문과 방송은 그 성명을 긴급뉴스로 다루었다. 사람들도 여기 저기 모여 이 뉴스를 화제 거리로 삼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꿈이었다. 그러나 잠에서 깬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헤드라인 뉴스를 사실로 기대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그만큼 현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누구도 이렇게 이상적이거나 급진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추었다. 정말 사실일 수는 없는 걸까? 아니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이 땅 어딘가에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그건 감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 뉴스는 시청 앞 광장의 대형 트리와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캐롤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렇게 오늘 또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목사인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을 한다. “모든 종교는 같은 것 아닌가요? 다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죠...” 그러면 나는 대꾸한다. “예수 믿는 것은 착하게 살라는 그 이상이죠. 그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또 하나의 종교인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차이도 발견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종교인이 아니었다. 아니 그 당시의 유대 종교를 유난히 공격하셨다.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시며 종교인들과 거리를 두셨다. 그의 삶과 교훈은 시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요한은 이렇게 썼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그 시대는 그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의 제자라는 사람들조차 그 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분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은 비로소 그 분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이렇게 노래했고, 그들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급진적이었다. 그분의 교훈 역시 래디칼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자기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누구도 이를 수 없는 천상의 가르침이며, 파격적인 교훈이었다. 한번은 한 부자 청년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자청했다. 그러자 “너는 가서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물론 이 청년은 재산이 많은 이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 

나는 다를까? 꿈자리가 아직도 뒤숭숭하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입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을 행할 때마다 예수의 몸을 먹고 마신다고 고백한다. 독일의 신학자인 본 훼퍼는 “교회는 남들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켄터베리의 주교는 “이 세상에서 교회만이 자기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사실을 그의 몸 된 교회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작은 촛불을 꺼질세라 틀어쥐고 언 손과 발을 호호 불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눈밭을 지나 온 동리를 다니며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 땐 온 동네의 잔치였다.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우리 마음에 구유를 만들고 그 분을 맞이했다. 그 땐 정말 꿈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화려한 줄 네온과 넘치는 선물 속에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사라져 버렸다. 그의 몸인 교회조차 이 기쁜 소식을 잊어버릴까 겁이 난다. 이번 성탄절엔 티 에스 엘리엇의 시 한편을 묵상하며 보내야겠다. 문밖에 서 계신 주님을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으려면...   
 
등이 멋없이 넓적한 하마 녀석/ 진흙 가운데 배를 깔고 자빠져 있다/ 보기엔 아주 건장한 놈 같지만/ 겨우 살과 핏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중략...

나는 하마군이 날아서/ 습한 대초원에서 하늘에 오르고/ 합창하는 천사들이 그를 에워싸고/  드높은 호산나로 하나님의 찬가를 부름을 보았다.

어린 양의 피로 씻기고/ 천사의 팔에 안겨/ 성자의 대열에 참여한 그는/ 황금의 거문고를 연주하리라.
그는 눈처럼 하얗게 씻겨/ 모든 순교한 처녀들의 키스를 받으리니/ 허나 참된 교회는 하계에 머물며/ 낡고 썩은 안개에 싸여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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