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36)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순수의 열정으로 빛나던 투혼 / 절망 속에 온몸 던진 희생과 사랑/ 아낌없이 다 내준 거룩한 사명/ 가슴마다 강물되어 길이 흐르리/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이 시는 서울소방학교 추모탑에 새겨진 순직 소방관을 위한 추모시로서, 공모에서 당선된 나의 시다. ‘소방혼消防魂’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추모탑은 황금빛 불길이 하늘로 타오르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화재현장을 떠오르게 한다.

화마火魔와 싸우다 현장에서 숨져간 소방 공무원 79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탑 앞에 서면 언제나 나는 회환에 젖는다.

2004년 을지연습으로 우리 소방대원들은 서울 강남의 한 고층건물에서 인명구조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건물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가 사람을 구하는 훈련이었다. 진압팀장이 울먹이며 다가왔다. 대원 중 한 사람이 추락하여 현장에서 순직한 상태였다.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전날 예행연습까지 잘 끝낸 상황이었다.

순직한 대원은 언제나 수첩에 두 아이 사진을 끼워 두고 자랑스러워하던 특전사 출신이었다. “강남소방서 과장입니다.” “아, 네 과장님, 안녕하세요?” 부인의 상냥스러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훈련 중에 부상을 입어 병원 응급실에 와 있습니다”

숨진 대원의 장례식은 강남소방서장으로 치렀다. 365일 비상상태로 명절 한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친구들의 경조사마저 제대로 찾아볼 시간이 없어 사회와 멀어지는 게 소방관들 삶이다.

얼마 전 한 대원이 화재현장에서 숨졌을 때도 기억이 난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시꺼먼 연기가 건물을 휘감아 덮고 있었다. 우리는 신속히 불 속을 들어가 불길을 잡았다. 혹시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지 몰라 대원들을 다시 들여보냈다. 그 순간 한 대원이 어둠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엘리베이터 통로를 보지 못하고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앗’이란 짧은 비명과 함께였다.

남들은 불을 피해 대피하는 순간, 거꾸로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게 소방관이다. 미국 9.11 테러 때도 소방관들은 묵묵히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소방관을 세상에서 가장 바보라고 말한다. 난 불현듯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미국의 한 소방관이 썼다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였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아무리 강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저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봐주소서’

순직한 대원에게는 노모와 아내, 다섯 살, 세 살배기 두 아이가 있었다. 30대 부인의 어깨에 너무나 큰 짐이 얹혀졌다. 나는 부인에게 남의 보증을 서지 말고, 돈을 빌려주지도 말고 아끼고 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그녀의 직장도 마련해 주었다.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몇 년 뒤, 순직 소방 공무원 추모비 ‘소방혼건립행사장’ 에서 였다. 추모탑에는 그녀의 남편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간만에 본 그녀는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요즘 직장은 잘 다니세요?”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나요?” 아직도 새댁인 그녀의 젊음이 안타까웠고, 뒷모습이 참으로 쓸쓸하게 느껴졌다. 사고 당시 전화를 했을 때, 상냥했던 그 목소리와는 너무도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누가 그녀의 웃음을 앗아갔나. 소방관들은 그것을 숙명이라고 오늘도 묵묵히 불 속으로 뛰어든다.

오늘도 나는 추모비를 바라보며 그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에 머리를 숙인다. 비석에 쓰인 이름들이 햇살을 받아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이 글은 2010년 8월 6일 자 조선일보에 실렸던 글임...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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