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훈의 산새소리 (2)


배정훈 (제21회 2015년 정지용신인상 수상작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함 잠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全文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시의 첫 세 구절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일 수도 있겠다. 연탄 갈다가 이 시가 생각나 인터넷에서 전문 찾느라 고생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고도(高度)상으로 대관령과 맞먹는다. 700미터를 넘는 답운재를 넘어 택배기사도 내비게이션도 대놓고 무시하고 등 돌리는 마을 그 어귀에 살고 있다. 향후 내가 이 땅을 이어받는다면, 쥐고 있다면 대관령에서처럼 황태덕장이나 양떼목장 혹은 체험농장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현재는 이것이 대세니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을 쉽게 벌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럴 땐 참 고맙다, 이런 글 쓰는 재주 밖에는 없어서, 또 뒤늦게 얼라 낳고 뚱뚱한 몸이 아이러니하게 부실타 해서. 남편은 매번 앓는 소리하는 내게 60대 노인만도 못하다고 타박을 주며 걸어다니는 병원이라고 한다.

그렇다, 너무 부실한 것도 어떨 땐 죄스럽다. 젊은 혈기를 분에 넘치게 놀린 탓에 지금은 골골대는 내가 하루도 지칠 줄 모르는 두 돌 딸아이와 기싸움 하는 게 힘에 달린다. 농사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설거지 좀 해댄다고 투덜댄다.

어느 논문에서는 모든 생물이 어릴 때 죽지 않고 살아남는 가장 큰 힘은 귀여움이라고들 한다. 세상에 햇것 치고 귀엽지 않은 있던가. 아무튼 말을 둘러보니 위의 시에 대해 하고픈 말은, 서른 중반인 나에게 더 이상의 귀여움은 무리수(無理數)고 골바람에 지붕이 날아갈 것 같은 집에 연탄이 자주 식는다는 것이다.

어린 딸아이 감기 들라 늘 연탄을 갈아대는 친정엄마를 보면 엄마가 연탄 같다. 내가 함부로 차던 연탄, 말로 긁고 눈물로 으깨고 불씨가 희미해져가는 연탄재, 그러면서도 내게 열을 나눠주기가 한량없는.

다들 부모님께, 특히 엄마에게 잘하라고들 한다.
반쯤 타 가장 아래로 밀려나 위의 연탄에게 불을 옮겨주는 연탄을 보며 나는 느낀다. 현재 나의 모습은 어디 해당하는가? 나는 누구에게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뜨겁자고 하면 너무 도가 지나쳐 그 사람을 먼저 태워버리거나 미적지근하게 끝나는 인연이 다수였다.

아이를 출산한 나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어른이다. 달래고 어르고 양보하고 다그치고 노력하는 엄마의 잠재력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골치 아프다. 연탄가스처럼... 그래서 연탄가스가 독한가 보다.

그런 연탄이 식는다. 자꾸만 연탄이 식어간다. 그럴 때마다 철렁한다. 내게 옮겨 붙기도 전에 꺼져버릴까. 엄마는 나의 연탄이다. 나를 위해 뜨겁게 살아준 사람, 오직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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