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38)


마음을 주고받는 설날이 다가온다. 명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선물이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집의 세시풍속을 돌아본다. 해마다 설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어른들께 담배 한 갑씩을 선물하였다. 좀 더 잘한다고 하면 소주 한 병이나 담배 한 보루 정도였다.

예전에는 담배 한 두 갑으로도 인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과일을 상자째 선물해도 체면치레로 부족한 느낌이 든다.

선물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서로 주고받는 문화로 바뀌었다. 마음을 담아 정을 나누는 미풍양속으로 여겨지던 선물의 의미가 퇴색된 듯하다. 사회가 순수함을 잃은 결과다.
나는 대부분 상대방에게 선물을 주는 편이고, 간혹 친지로부터 받는 경우가 있다. 명절 때면 주위에 선물을 돌리기도 하는데, “왜 이런 것을 보냈는가” 하며 돌려받은 경우도 있다.

오래전 내가 후암동 119센터장으로 근무할 때, 상급부서로부터 선물을 받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관공서에서는 사과박스 하나라도 돌려보냈다. 그 와중에 재래시장 떡집에서 우리 센터에 떡을 보내왔었다. 나는 돌려보내지 않고 직원들과 나눠 먹은 적이 있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대가성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보내온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몇 년 지나서 조그만 선물은 주고받아도 괜찮다는 때가 있었다. 좋지 않은 국내 시장경기를 살리려는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선물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부담이 가기 마련이다. 요즘 공직 사회에서 경계대상 1호가 명절 선물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다보니 대가성 넘치는 선물의 향방을 쫓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부적절한 선물의 수수행위를 적발하려는 암행감찰이 시행되기도 한다. 떡값을 일종의 특별수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어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떡값을 주고받는 일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어쨌든 주려는 정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왜 주느냐가 문제다. 대가성을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하여 손쉽게 내린 결정이 ‘선물 안 주고 안 받기’다. 우리의 잘못된 관행이 선물의 가치를 짓뭉개 버린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주려는 사람이 있으니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선물반송센터’다. 부득이 전달받은 선물은 양성화 과정을 거쳐 불우이웃을 돕는 기관에 기탁하는 것이다.

선물은 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시기에 맞춰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순수함이 있을 때 그 이름값을 한다. 하지만 그 틈을 이용해 선물을 이해관계의 지렛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다만 인간의 정서상 그 대가성의 의미를 온전하게 제거하지 못하니 문제가 된다. 사회적으로 통용될 만한 수준에서 그 엄격성을 완화해도 되지 않을까. 선물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불순하다면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뇌물이 될 것이다.

선물과 뇌물 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가. 그렇다면 선물은 뇌물인가. 선물은 한편으로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득권을 얻기 위함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물 받는 사람을 보답이라는 의무감에 묶어놓기 위한 것이다.

정신분석적으로 본다면 이런 행위의 배면에는 사랑을 구걸하는 심리가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늘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당사자의 욕망이 배제된 행위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나 헌신, 혹은 친절이나 호의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이 세상에 주고받는 선물이 없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이 흐르지 않는 척박한 땅과 같이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도 마를 것 같다.

선물을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행복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 있는 불우이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받아서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을 고르는 안목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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