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부치는 편지-스물세번째]현대인의 도시생활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서울생활에 익숙한 나에겐 일상을 벗어난다는 자체가 쉽지않다.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자리를 잡고보면 전날의 피곤함을 씻지 못해 의자 깊숙이 몸을 담그고 잠들어 있는 주변사람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한 모습이 되고,  이렇게 시작된 나의 하루는 숨쉴틈없이 돌아간다.

 

출근하자마자, 그날의 중요한 일들을 챙기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는 등으로 하루를 바삐 보낸후, 저녁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생활속에서 가끔은 어릴적 고향 후포앞바다와 등기산에서 바라본 동해의 해안선이 그립지만 서울을 떠나기 쉽지 않던 차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시청 세무과의 38세금기동팀 직원 43명을 격려해야할 기회가 생겨 1박2일 일정으로 마침  대게축제가 열리는 내고향 울진 후포에 가게되었다.

 

 

일상을 벗어나서

토요일 오전일과를 마치고 소풍가는 초등학생의 들뜬마음처럼 약간의 흥분속에 서울을 떠났다. 도심의 정체를 벗어나 시원스레 고속도로를 2시간여 달릴 즈음 창밖으로 눈이 채 녹지않은 산비탈에 기골이 장대하고 붉으스레한 품격높은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소나무에 관심이 많던 나는 우리민족과 생로병사를 함께했던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 마이크를 들었다.

 

지난시절 춘곤기에 송진과 송화가루는 물론 솔방울과 솔잎까지 구황식품으로 우린민족과 애환을 같이 했고, 지금은 송이버섯을 생성하여 고향농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소나무, 죽어서는 궁궐이나 천년 고찰의 대들보로 사용되고 죽은 뿌리에서는 한약재(봉용)을 생성하여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소나무, 특히 울진의 나무로 지정된 금강송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게와 고포미역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홍게와 달리 속살이 꽉차고 맛이 좋아 일찍이 궁중에 진상되던 대게는 몸통이 크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울진에서 잡힌 대게가 영덕대게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30년대 대도시로 해산물이 공급될 때 교통이 편리한 영덕에 중간 집하되면서 영덕의 지명이 사용되어 영덕대게로 불려지게 된 것을 설명하는 동안 어느덧 우리를 태운 버스는 대관령을 넘고 있었다.

 

동해 해안선의 풍광

대관령을 넘어 동해고속도로를 접어들자 동해안 해안바위와 모래사장에 부딪혀 부서지는 흰파도와 그 위를 간간히 날아드는 갈매기, 심심챦게 펼쳐지는 백사장과 함께 어울어진 해송의 풍광은 어린시절 늘 보고 자란 모습이지만 어른이 되어 해외여행을 다녀본 지금에서야 내고향 동해안의 진목면에 감탄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동해안의 경관은 지구상의 그 어느 해안보다도 아름답다.

 

잠시 휴식을 위해 추암해수욕장에 내렸을 때 타원형을 그린 먼 수평선으로부터 달려드는 검푸른 파도와 함께 불어오는 소금내 썩인 바람이 폐부 깊숙이 숨어있던 도시의 공해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인고의 세월속에서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송의 모습이 우리 부모님들의 삶같아 좋았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기좋아 나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대게와 함께한 풍성한 저녁식사

어스름한 저녁기운이 돌 무렵 도착한 죽변항 포구는 조용한 휴식속에 인적이 끊겨 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포구 한켠에 버스를 세우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데 먼저 도착한 직원들이 식당앞 대게를 담아놓은 주위에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다들 살아있는 홍게다리 한쪽씩을 들고 게살을 빨아먹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저마다 맛있다고 한마디씩 하면서 내게도 게다리를 쭉∼찢어서 건넸다.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대게 이야기를 한창 나누고 있는 데 더운김이 채 가시지 않은 대게가 들어왔다. 대게를 처음 먹어보는 몇몇 직원들이 게다리와 씨름하는 동안 게를 자주 먹어본 직원들은 게눈감춘다는 우리속담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다들 손과 입가에 게살을 붙여가며 정말 맛있게 들 먹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직원들과의 풍성한 저녁식사였다.

 

2005 울진세계환경엑스포 공원 현장을 찾아서

국내 유일의 자연용출수로 일년 내내 약알카리성 원수 그대로의 온천을 즐길수 있는  덕구온천콘도에서 하루밤을 묵고 이른새벽 죽변항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콘도를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날씨탓에 바라던 해돋이는 볼 수 없었지만 바다와 절벽의 비경속에 어우러진 드라마 ‘폭풍속으로’의 주인공 김현준의 집과 성당의 모습은 비가 뿌리고 있는 탓인 지 오히려 드라마적 느낌을 더욱 살려내고 있었다.

 

비를 맞아 조금은 한기를 느꼈지만 뜨끈한 퉁수와 햇대기 매운탕으로 속을 풀고 덕구온천물로 몸을 풀고나니 편안한 마음에 아무런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온천에 더 있고 싶었지만 대게축제장에서 만나기로 한 고향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후포항으로 가는 길에 울진군청 환경보호과 환경미화담당팀장으로 근무하는 장헌원 후배의 안내로 울진 세계 친환경 농업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는 왕피천 엑스포공원에 도착했다.

 

평소 안면이 있던 최규환 사무총장님으로부터 왕피천 엑스포공원 조성개요와 세계 20여개국이 참여하는 친환경농업에 관한 전시·공연·체험·학술대회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그냥 시골고향으로만 생각했던 울진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농업엑스포를 치른다는 사실에 놀랐고, 정부예산 지원없이 울진군예산과 원자력발전소 등 공식후원사의 지원만으로 행사를 치른다는 데 또 한번 놀랐으며, 세계로 도약하는 내고향 울진의 모습이 가슴벅찰 정도로 자랑스러웠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 사무국 직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미안함을 안고 엑스포공원을 떠났다.

 

대게의 본향 울진의 대게축제장

후포항에 도착하자 어릴적 친구이자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울진군청 김응재 재무과장이 나와 우리 모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게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항구에는 해경 경비정들이 접안을 하고 관광객에게 경비정을 공개하고 있었고, 후포어협앞 한마음 광장에서는 관광객과 어민들이 힘을 합쳐 60미터는 족히 될 법한 긴 김밥을 말고있는 등으로 큰 축제행사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후포해안도로변에 늘어선 대게판매장에서는 여러 종류와 크기의 대게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어판장쪽 우회도로에는 동네할머니들이 집에서 찐 대게를 정성스럽게 스치로폼 박스에 담아 팔고 있었으며, 함께간 직원들도 쇼핑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가는 수많은 관광객을 보면서 너무도 풍성한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게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이곳 후포항은 나에겐 어릴적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해안가에 있던 우리집은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때 무너진 적이 있고, 어판장에서는 친구들과 바다뱀장어와 지누(강성돔) 낚시를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오후반 수업이 있던 날 - 그 때는 학생이 많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받았다 ― 친구들과 바닷가 해안에서 고기잡고 헤엄치는 데 정신이 팔려 주판대회에 참석하는 것도 잊어버려 큰 낭패를 치른 적도 있었던 그 곳이 이제는 대게 축제장이 된 것이다.

 

울진군수님과의 점심식사

한시간여 대게축제장을 관람한 후 대게축제행사에 참석한 손님접대에 바쁘신 김용수 울진군수님과 우리직원 43명이 늦은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서울에서 먹던 곰치국과는 다른 정말 어릴적 먹던 그맛 그대로의 곰치국이었다. 군수님께서는 식사도중 함께간 직원들에게 울진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친환경 농업의 중요성,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울진생토미의 우수성, 대게의 어원, 울진대게가 영덕대게로 불리게된 경위, 고포미역이 궁중진상품이 된 이유 등 다시 들어도 가슴 뿌듯한 이야기들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함께간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시면서 울진을 널리 알려달라는 당부말씀에 “앞으로는 직장동료나 이웃사람에게 울진홍보맨이 되겠다”라는 약속을 드리면서 군수님과 헤어졌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려고 버스에 탑승하려는 순간 후포초등학교 동기이고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나의 죽마고우 박무근(천신수산대표)과 김일만이 직원들과 먹으라며 생각지도 못했던 문어와 골뱅이를 선물해 주었고, 김응재 재무과장은 군수님께서 주셨다면서 울진대게를 가득담은 박스를 차안에 넣어 주었다.

 

불영계곡의 추억과 고향의 고마움

서울로 오는 길에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불영계곡 경치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울진대게, 문어, 골뱅이에 소주를 곁들인 산중파티는 우리직원들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군수님과 친구들의 훈훈한 고향인심에 이 글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리며 평소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지명 그대로 보배롭고,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이 풍성한 울진(蔚珍)…. 산과 바다와 계곡에 둘러싸여 살기좋은 고장…. 후포등기산의 신석기 유적·봉평신라비·울진향교·구산리 삼층석탑·성류굴·원자력발전소·백암과 덕구온천·친환경 농업이 있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   

 

내가 태어나고 자라서 고향의 향수와 훈훈한 고향인심을 언제나 맛볼 수있는 울진이 후포가 언제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더없는 행복감에 졌는다. 하루도 안돼는 34시간 남짓동안 34년 이상의 추억을 되살려준 울진대게축제 현장여행을 마치고 일상의 현실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항상 그 곳에 있다. 앞으로도 영원히….

 

 1946년 후포리 출생

 학력: 후포초등학교 졸업(15회), 후포고등학교 졸업(14회), 건국대 법학과 졸업(학사),

 경희대 대학원 세무관리과 졸업(석사)

 

 현직: 서울시청 세무과장, 서울시립대 강사(세무학), 서울시 공무원교육원 강사

 역임: 서울시청 계약심사과장, 역사박물관장, 문화재과장, 월드컵추진반장,

 서울시청 산업정책팀장, 세정팀장, 행정심판팀장, 제도개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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