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42)


 

내가 근무하는 보라매안전체험관 주위에는 고층건물들과 아파트 사이로 커다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할 때 늘 벤치에 앉아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

창가에 서서 물 한 컵을 마시며 확트인 공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가 체험관 주위를 청소한다. 처음에는 공원을 산책하고 지역사회의 환경을 위하여 청소를 하고 쉬나보다 생각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는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궁금하였다.

일찍 출근한 직원이 “저 사람은 노숙자인데 체험관 주위에서 자고 매일 저렇게 주변을 청소해요. 여기에 온지는 한 보름이 되었어요.” 라고 말하였다. 그는 내 눈 앞에서 연신 담배꽁초, 휴지조각을 찾아내어 줍고 있었다.

노숙자 치고는 후리후리한 키에 얼굴이 곱상하고 깨끗한 편이었다. 그는 왜 노숙자가 되었을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흰 피부에 용모가 준수한 그의 몸에서는 오랫동안 씻지 않아 시큼한 냄새가 났다. 눈동자는 흐릿하게 풀려있어 삶의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멍하니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일은 안 나가세요?.” “노숙자에요.” “동사무소에서 보조금은 안줍니까?” “노숙자라니까요.” 귀찮은 듯이 대답한다. “나는 여기 체험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약간의 미소를 띄우면서 물었다. “관장이세요?” “네.”

나의 신분을 확인한 때문인지 마음을 조금 여는 표정이다. 귀찮게 자꾸 묻는 사람들이 있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노라고 사과하는 것으로 보아 정신은 멀쩡했다. 그는 아침에는 여기서 청소를 하고, 낮에는 공원 저쪽 편을 청소를 한다고 했다.
“언제부터 이런 노숙자 생활을 했어요?” “꽤 오래되었지요.”

그는 주위에서 주는 것을 얻어먹고, 절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는 돈을 받기도 하고, 휴일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면 먹을 것이 있지만 가끔씩 굶기도 한단다. 가족관계를 물었더니 여러 가족이 있다면서 말끝을 흐린다.
“왜 직장을 그만두셨어요?” “세상에 물어봐야지요.”

그의 건조한 목소리에는 세상을 원망하는 감정이 배어 있었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인간의 헛된 욕심으로 세상은 한없이 어지럽고 위태롭다. 아마도 범죄와 질투, 시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의 가슴속에는 따스한 봄날에 피는 진달래꽃 같은 소박한 꿈을 지니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부천시청에 공무원으로 7년간 몸담았다는 그는 공무원 조직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하더니 다시 입을 굳게 닫고 쓰레기 줍기에 몰두했다.

한 때는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을 텐데,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의 쓸쓸함이 읽혀져 포기하였다. 사랑이란 이름의 피붙이들로부터 어떻게 떠나 왔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인생의 골목길을 방황하는 그의 마음이 되어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노숙자들도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업의 실패, 도박 빛 때문에 그가 무너진 것은 아닐까. 그는 갱생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듯했다.

점심 때, 어디서 얻었는지 빵 조각을 먹고 있었다. 끼니를 겨우 때운 후에는 그늘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하늘을 쳐다본다.

나는 그에게 필요할 때 쓰라고 수건 두 장을 건네주었다. 퇴근 무렵, 그는 벤치에 앉아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 찾아오는 밤이 얼마나 두려울까. 남들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그들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일 것이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6시부터 2시간 동안 청소를 하고,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본다. 점심은 과자부스러기로 때우는 듯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리 밑이나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그는 가지고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자리 하나와 밤에 덮고 잘 윗옷 하나. 물병,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만날 사람이 있는데 찾게 되면 일할 예정이다.”고 하였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그를 수렁에서 구해 줄 수 있을까.

직원들은 일을 준다 해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을 했다. 누구나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새로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음도 황폐해져 있을 것이고, 의욕도 빈약할 것이다. 그를 보면서 인생에는 형식도 정답도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삶은 정형화된 모범답안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찾는 사람이 원수인지 사랑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그가 하루빨리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 옹달샘처럼 맑은 희망이 솟아나기를 기원해 본다. 오늘도 그는 자신이 하룻밤 잠을 청할 벤치 주위를 청소한다.

1998년 사업이 망해 노숙자가 된 장금씨가 쓴 ‘집시의 기도’가 생각났다. 충정로 사랑방에 기거하면서 썼다던 시이다. 그는 이듬해 병원에서 숨을 거뒀으나,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되어 벽제화장터에서 한 많은 세상을 마감하였다.

노숙인들은 밥을 먹을 때마다 이 글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단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 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안 돼” 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 「집시의 기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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