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명 룡 집필위원



 

이제 다소 철지난 얘기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한 턱 내겠다는 말 대신 ‘쏜다’ 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대중적으로 퍼지나 싶더니 지금은 거의 관용어로 일반화되다시피 쓰고 있다.

그렇지만 ‘쏜다’ 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고, 날내 나는 자극성 때문에 여전히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서울에서는 해마다 여의도와 한강 일대에서 불꽃축제가 펼쳐지는데 요즘은 단 하루 일정으로 끝나지만, 처음 몇 해 동안에는 세계불꽃축제라 하여 3일 동안 이어졌었다.

그 중 마지막 날에 항상 주최 측인 한국화약(한화)이 배정되었는데, 당시 한화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오늘은 한화가 쏜다!” 였다. ‘쏜다’ 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그 문구의 기발함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살게’ 라는 말 대신 ‘내가 쏜다’ 라고 표현을 하게 된 연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고, 또 각종 언론은 여러가지 설을 제시해 왔다. 그 주장들은 대체적으로 ‘쏜다’ 라는 말이 돈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필요한 자금을 실탄 또는 탄약으로 비유하는 사례를 선거판의 정치인들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한 턱 내겠다는 사람이 ‘산다’ 는 말 대신 ‘쏜다’ 고 할 때, 실탄은 충분하다는 허풍을 덧붙이는 경우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전장(戰場) 같은 현실에서 돈은 실탄과 마찬가지라, 돈을 쓴다는 것은 실탄을 쏘는 것과 같다고 노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돈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어떤 이는 남자들이 계산대를 둘러싸고 뒷주머니에 꽂힌 지갑을 서로 먼저 꺼내드는 모양새가, 마치 마카로니웨스턴에서 권총을 뽑는 총잡이들을 연상케 한다하여 ‘쏜다’ 라는 표현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이러한 주장들 뒤에는 돈이 무기에 비유되는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쏜다’ 라는 말이 한참 유행하고 그 연원에 대해 여러 주장들이 난무할 때, 적잖은 사람들은 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TV를 통해 유행어로 정착하기 전에 이미 ‘쏜다’라는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말장난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스스럼없는 직장 선배에게 업무 신세를 지고 나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그 선배는 “이번에도 말로만 쏘냐?” “감사는 원래 말로 쏘는 겁니다.” 하며 받아친다. 즉, 한자(漢字)로 감사(感謝)는 ‘고마워서 말(言)로 쏘는(射)는 것’이라는 의미를 두고 한 말장난이다. 일종의 ‘아재 개그’인 셈이다. 또 사례(謝禮)는 ‘말로 쏘는 게 예의다’ 라는 장난도 있었다.

여기서 파생되어 “말로만 쏘지 말고 밥 좀 사라”가 나오게 된다. 쏜다 라는 말의 연원이 꼭 한자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말장난도 유행을 촉발한 데 한 몫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쏜다’ 라는 말이 표면적으로는 자극이 매우 강한 어조이지만, 애초에 장난기가 배어있어서 그런지 ‘내가 산다’ 보다 실행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것은 쏘는 사람과 대접받는 사람의 물리적 거리와도 상관이 깊은데, 그런 점에서 총알의 유효사거리와 비슷하다. 따라서 멀리 있는 사람일수록 ‘산다’ 보다는 ‘쏜다’를 더 많이 사용한다. 나 같은 경우 울진에 있는 고향친구들에게서 자주 그 말을 사용하고 듣는다.

“야, 언제 한번 내려와라. 내가 쏠게” 그에 대한 내 대답 또한 일정하다. “니가 올라와라. 내가 쏠게” 문득,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그렇게 말로만 쏜 지 참으로 오래 되었음을 새삼 깨달아 ‘쏜다’라는 주제를 들추어보았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