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44 )
옛날, 인제는 오지 중의 오지의 땅이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고 하던 땅.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았던 곳 인제가 변했다. 자작나무 숲을 보려는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승용차로 서울에서 두 시간 만에 닿았다. 큰길가 안내소에서 숲까지 걸어서 40분 거리, 거의 다 왔을 때 안개가 짙게 내렸다. 하늘과 숲이 만나는 순간을 놓쳐버렸다.
안개에 투영된 직선의 빛이 아름다워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쉽게도 금세 안개가 걷혔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안개 속에서 빛의 내림을 보았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온통 새하얗다. 높이 20미터가 넘는 자작나무는 우뚝우뚝 솟아 하늘을 향해 시위 중이었다.
핀란드 같은 북유럽에서 자라는 베루코샤 자작나무가 여기서 뿌리를 내리다니. 자작나무에게는 낯선 땅일 텐데, 이만한 숲을 가꾼 사람들의 집념에 머리가 숙여진다.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룰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온 사람들의 마음이 은회색으로 빛났다. 원대리라는 첩첩산골이 반짝이는 것은 서로를 보듬는 마음 아닐까.
햇볕도 자작나무를 향해 몸을 낮춘다. 자작나무를 보면 ‘순결하다’ 라는 의미가 떠오른다. 하얀색은 우쭐대지 않아 실증이 덜 나고, 강인한 의지를 숨기고 있어서 삶의 여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작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 채색의 꿈틀거리는 근육질에서 무아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자작나무와 함께 인생길을 걸어볼만하다. 정신을 깨우는 숲길이 고요와 평화의 손을 내민다. 하얀 숲길을 걸으며 하얀 마음을 얻고, 내면 깊은 곳의 소리를 듣게 된다. 티 없이 맑고 투명한 본성으로 돌아가리라.
삶이 힘겨울 때, 마음이 번잡하고 나태해 질 때, 숲길을 향해 떠나라. 이 세상에 하나쯤 마음속의 숲길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사람들의 발길 뜸한 시간, 바람이 숲을 가르자 자작나무는 나를 향한 환영의 박수를 숨차게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