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브렉시트 후 美 움직임 주목,


20세기 초 유럽 사분오열때 - 日과 손잡고 세계전략 펼쳐


 

영국인들이 쏘아올린 ‘세계질서 재편’ 신호탄의 불똥이 어디로 어떻게 튈까?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이다. 미국도 영국을 따라갈까?

EU라는 유럽합중국은 경제와 안보적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이해집단이지만, 미합중국은 신앙의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 두 가지 자유정신으로 세워진 나라다.

EU는 돈을 보고 결혼한 것이라면 미국은 같은 신앙으로 결혼한 부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영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생각은 성급하다.

“유럽은 문제를 일으키고 미국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은 역사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서 유럽이 저지른 골치 아픈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해 왔다. 당연히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은 영국처럼 간단히 세계주의를 버리고 고립주의로 회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미국인들이 사해동포주의에 투철해서가 아니고 국제질서의 정점에 있는 미국과, 과거에는 제국이었으나 지금은 중급파워국가로 내려앉은 영국과는 국익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어떨까. 이번 사태로 일본이 가장 큰 변신을 할 것이다. 1세기 전 일본은 내란으로 뒤뚱거리던 러시아를 침몰시킨 다음 조선을 강점하고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 1차대전 이후 서구 제국주의의 분열을 틈타 만주로 진출해서 세계강국이 되었다.

2차 대전 패전과 중국의 굴기로 눌려지내 온 일본의 보수 전략가들은 “유럽의 약화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계기가 마련됐다”고 내심 쾌재를 부를 것이다.

20세기 초 사분오열한 유럽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본과 손잡고 세계전략을 펼친 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은 벌써부터 미일동맹을 강화해 왔던 터.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아베 내각을 전폭 지지하기 위해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히로시마까지 가서 헌화할 정도였다. 이제 유럽분열을 계기로 더욱 미일 파트너십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가 계속 질질 끌고 중국이 팽창주의를 밀고나갈 경우 일본의 핵무장까지 눈감아 줄 가능성이 높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부담 속에서 일본의 역할과 비중을 높여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이제 한국은 구한말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였다. 밖으로 줄서기를 현명하게 해야 하고, 안으로는 쪼그라드는 살림살이를 되살려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전략이 ‘연습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진검승부’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중국굴기가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양다리 전략정서를 눈감아 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의 최대 우방인 유럽(EU)이 붕괴조짐을 보이는 판국에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돌이켜보면 국제정세가 위기로 치달을 때 한국 같은 ‘낀 나라’가 양다리 전략을 펼친다는 것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기 전에 독일처럼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했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세계적으로 리더십의 위기라고 하지만 미국, 중국, 일본은 설사 리더십에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이 있고 러시아도 자국의 이익을 지켜내는 수준은 된다. 한국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주변 4대강국에 비해 가장 탁월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 역사상 국제질서 재편에 통찰력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위기를 역으로 발판삼아 국운융성을 이뤄낸 사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뿐이었다. 김춘추와 같은 불세출의 외교관과 김유신과 같은 군사전략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겠다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들뿐이다. 세계질서 재편과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은 구한말보다 나을 것이 없다. 다행히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이 제 정신을 차리면 좋은 리더를 뽑을 수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헌법 개정 문제와 같은 결정적인 계기에 현명한 선택을 못하면 임진왜란, 구한말에 이어 또다시 일본에 무릎을 꿇게 될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