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명 룡 집필위원

 

바야흐로 한국 가수들의 시대, 가요방송 전성시대다. TV를 틀면 방송사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다채롭게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수시로 방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가요부흥의 선두에 ‘나는 가수다’가 있었다. 그 ‘나가수’에서 JK김동욱이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불러 방청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눈물바다를 만들고 시청자들도 따라 울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절절한 음색과 노랫말에 JK김동욱의 노래 제목처럼 가시를 삼킨 듯 가슴들이 따끔거렸던 것이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이하생략>

원래 이 노래는 가수 이연실이 노랫말을 짓고 동요 <기러기>라는 곡에 붙여 불렀는데,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도 너무 슬픈 가사에 사람들이 눈물짓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노랫말이 나오게 된 계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930년 일제강점기 때 이원수의 동시에서 비롯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웬만한 최루성 영화나 소설에서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고향 울진 쇳골 헌 광산이 생각났고 뒤뜰 울타리에 찔레꽃을 몰래 따서 먹었던 기억을 가슴이 떠올렸다.

요즘도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유니세프 캠페인 영상에 등장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저 동시가 떠올라 먹먹해진다. 그러나 진짜 슬픈 찔레꽃은 따로 있다. 정채봉의 <초승달과 밤배>에 등장하는 찔레꽃이다.

난나라는 별명을 가진 초등학교 2학년 꼬마는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과 함께 외딴 섬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다. 할머니는 온종일 개펄에서 일하지만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가 버거운데, 엄마 젖을 떼지 못한 채 할머니에게 떠맡겨진 동생 옥이는 영양실조로 등이 점점 굽어져 꼽추가 되고 만다.

저물도록 학예회 준비로 바쁜 어느 날 할머니는 도시 병원에 입원한 삼촌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어 어린 난나와 옥이는 낮에 먹다남은 식은 밥을 먹고 굴뚝새 우는 밤을 지새운다.

이튿날 도시락도 없이 학교에 간 난나는 방과후 고픈 배를 달래며 학예회 연습시간을 기다리는데, 옥이가 난나 친구들의 놀림을 당하면서 도시락을 들고 학교 운동장에 나타난다.

옥이가 창피한 난나는 동생을 혼내며 도시락을 빼앗아 학교 뒤 솔밭으로 달려갔다. 집에 쌀뒤주가 텅텅 비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도시락 뚜껑을 연 난나는 입으로 자기 손등을 깨물었다.
도시락 속에는 하얀 찔레꽃이 가득 담겨있었다.

배가 고픈 오빠를 생각하여 비탈을 오르내리며 찔레꽃을 따 담아 온 옥이. 찔레 가시에 손톱 밑을 얼마나 찔렸을까를 떠올리며 난나는 옥이가 믿고 있는 대로 동생의 등에는 날개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지어낸 이야기라도 이쯤 되면 누구든 찔레꽃 가시를 삼키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호 울진신문에 실린 지산 이규상님의 ‘붉은 찔레꽃 있다, 없다?’를 감사히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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