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영 익 (전 재부울진군민회 총무)

 

海北城東 有一亭 (해북성동 유일정)/ 登臨眼界 忽然醒 (등림안계 홀연성)/ 鳥衝殘靄 低飛峖 (조충잔애 저비안)/ 月照紅蓮 遠上汀 (월조홍련 원상정)/ 千古文章 爭甲乙 (천고문장 쟁갑을)
百年侖奐 耀丹靑 (백년윤환 요단청)/ 吾州勝狀 平湖在 (오주승상 평호재)/ 沽酒斜陽 去馬停 (고주사양 거마정) ...黃兎 重陽 笑溪 尹龍璣 稿 (황토 중양 소계 윤용기 고)


바다 북쪽 성동 쪽에 한 정자가 있어/ 올라가 바라보면 눈 앞이 홀연 환하도다/ 새들은 아지랑이 뚫고 산자락 낮게 나르고/ 달에 비친 붉은 연꽃은 멀리 물가에 으르렀네/ 원로 문장가들은 저마다 글재주를 겨루고/ 백년토록 물속의 무늬는 단청을 더욱 빛나게 하네/ 우리 고을에 뛰어난 경관과 거울같은 호수가 있어/ 석양길 주막에 가던 말도 멈추게 하네/ ...기묘년 중앙절 소계 윤용기 고

위의 시는 울진읍내 호반에 있는 연호정의 대들보 밑에 걸려 있는 연호정 시다. 이 연못은 주위가 1.2㎞나 되고, 수심이 깊으며 예부터 연꽃이 만발하면 많은 시인과 풍류객들이 모여 저마다 글재주를 겨루며 향원 놀이에 취향 하였던 곳이다. 이런 연호정에 위의 시가 걸리게 된 것은 기묘년 중양절에 이 연호정에서 시대회가 열렸는데, 아마 최우수작으로 당선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시를 지은 소계 윤용기 선생은 이조 19대 숙종 15년 과천 현감을 하시던 윤 성의 후손인데, 윤 성은 송시열, 김수향 등과 민중전 복위 운동을 하시다가 장희빈 세력에 밀려 송시열, 김수향 등은 죽임을 당하였고, 윤 성은 울진으로 유배를 왔는데〈기사환국 : 기사사회, 복권 후에도 내직으로 가지 않고, 울진 입향 시조가 되셨다.

윤용기 선생의 관직은 이조참판, 평안도 관찰사를 지내시다 낙향 후 원남면 무릉동 호계 백운대에 정자를 짓고 후학지도와 시로서 생을 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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