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현리 울진사람 이주 마을 위로 방문
‘내 사랑 울진밴드’ 고향의 정 가득싣고

내사랑 울진밴드의 황승국 리더 그리고 이서윤 부 리더와 지역별 리더들 뭐 한가지 좀 물어봅시다. 당신들은 2016년 9월 4일 이른 아침에 50여명을 버스에 태우고, 또 봉고화물 트럭엔 음식을 하나 가득 준비하고,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 1리로 가서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온 것이요?“그곳에 울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구요? 아니 울진 출신 사람들이 대한민국 한 두 군데 산답니까 왜 하필 거깁니까? 뭐라구요, 거기엔 아주 특별한 분들이 살고 계신다구요? 도대체 뭐가 그리도 특별하단 말이요?”

그렇다 아주 오래전, 강산이 다섯번도 더 변한 아주 오래전이다. 현재 65세 이상은 돼야 그래도 사라호 태풍 그때를 어렴풋이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57~8년전 추석 무렵 어느날, 지금까지도 그 기록을 능가할 태풍이 없을 정도의 초강력 태풍 사라호가 우리 울진을 덮쳐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수재민이 생겼고, 또 보릿고개가 있던 그 시절에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던 이웃들이 너무도 많았을 때다.

나라에서 수재민과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모집하여 전방에 노는 농사지을 땅을 무상으로 주면서 그분들을 이주시켰고, 그분들 또한 신세계의 꿈을 그리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 갔는 데, 그 당시 내 나이 또래 정도가 있던 우리 집안의 한 가정도 이주해 갔다.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 해 겨울 그들이 떠나가던 그날, 나라에서 보내온 화물트럭(일명 도라꾸) 적재함에 못쓰는 천 쪼가리로 적재함의 찬바람을 이기고자 온 얼굴 감싸게를 한 내 또래와 부모들이 타고 있고, 그 뒤엔 이불 보따리, 옷가지 보따리, 그리고 지금은 고물상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양은 그릇 몇 개와 무쇠 솥 한 두 개가 달랑 실려 있었다.

잘 가거레이, 잘 가거레이, 부디 부디 가서 부자 되거레이! 살아 있으면 언젠가 우리가 또 만날거 아이겠나! 꼬깃 꼬깃 꼬쟁이 안주머니에서 10환 짜리 한 장씩을 그들에게 찔러 주면서 연신 저고리 소매로 눈물을 닦던 이웃들.야~ 알았니더 고맙니더 마카 다 고맙니더! 꼭 부자돼서 고향에 올게요. 전부 다~자알~계시~ ~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목이 메여 하직의 말도 끝맺지 못한 채 그렇게 그들을 태운 낡은 화물트럭은 슬픔의 울진 아리랑이 되어 7번국도 저 끝으로 점점 사라져 가버렸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 한 많은 울진 아리랑들이 모여 살고 있는 바로 그 마을로 내사랑 울진밴드가 울진의 냄새를 잔득 묻히고 찾아가서 말도 안되는 봉사와 위안 잔치라는 큰 일을 그만 저지르고 온 것이 아니겠는가!서울에서 두어시간 반 정도 갔을까, 간간히 지나가는 얼룩 무늬의 우리 국군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졌고, 마현1리 마을에 도착했을때 입구에는 ‘내사랑 울진밴드 환영한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 주변 천지사방엔 파프리카와 아로니아가 주 생산 품목인 과학 영농의 초 현대식 비닐하우스들이 공장지대 처럼 즐비하게 들어 서 있었으며, 우리를 마중나온 마을 사람들의 표정들은 다들 한결같이 밝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저 과학화된 현대식의 많은 농사시설들 그리고 저 밝은 얼굴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다들 부자로 살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저렇게 이루기까지 옛 시절 한의 울진 아리랑을 부르며 떠나왔던 이주 1세대들의 피를 토하는 인내와 노력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마중나온 어르신들이 전부가 울진 말을 쓰고 있어 혹시 졸다가 울진 온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여긴 울진의 후예들이 사는 게 맞다. 우리는 서로를 한참 손에 손잡고 또 부등켜 안으며, 깡충 깡충 뛰기도 하고 너무도 반가워서 난리굿들이다.그 순간 누가 크게 소리를 지른다.

마카 이짝에 얼릉 모여보세요! 다 같이 단체기념 사진 한방 밖고, 이리저리 편을 갈라 농갈레 가지고 정해 준 대로 따라가서 일 거들어 주고, 점심때 마카 이짝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무를 부여 받은 대로 각자 농장으로 동민들을 따라가서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드디어 준비된 음식과 동반한 가수와 함께 동민과 더불어 음식대접과 여흥의 시간이 시작 되었는데 기절 할 뻔 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누가 이렇게도 많은 음식을 장만했는지, 동네분들이 즐겁게 너무도 맛있게 드시면서 우리들에게 연신 수고들 많이 했으니 많이들 먹으라며, 사방에서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노래방 기계가 불을 뿜자, 그 동네 어른들은 모두가 가수였으며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정겨움 가득 사랑을 주고 받는 마음의 순간이였으며, 특히 울진식 찐 가자미와 젓국에 무친 미역 줄거리 그리고 고등어를 갈아 만든 지푸리는 정말로 일품이었다. 아마도 그분들에겐 그옛날 먹던 향수어린 음식이였을 것이다. 맞다 바로 이것이 울진 아리랑이 아니겠는가.

하루해가 너무 짧아서 그분들과 헤어지기엔 너무도 아쉬운 시간, 하루가 240시간 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고‘ 잘 계세요, 잘 가세요. 점점 멀어지며 흔들어주는 그 손들이 나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고 슬프게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사랑 울진밴드는 참 희안한 모임이다, 도대체 뭐 이런 단체가 다 있을까! 리더가 기획하고 주관자가 협조 지시하면, 진행 요원들은 아무 불평 불만없이 순식간에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아주 깔끔하게 모든 행사를 해치워 버리는. 그렇다고 연습도 안했을텐데, 다들 귀신들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금나와라 뚝딱! 도깨비 밴드란 말인가.자!즐거워도 아리랑, 슬퍼도 아리랑, 힘들고 어려워도 아리랑, 기대에 찬 내일도 아리랑,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하며 울진 아리랑,이제 2017년의 아리랑을 미리 그려보며, 2016년 철원 마현리에서의 울진 아리랑의 막을 내린다.

                                                            /재경출향인 오우용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