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울진문학축전이 2005년 6월 22일(수) 오후 3시 울진 왕피천 엑스포 공원에서 열립니다

<울진 문학축전>

6월 22일(수)오후 3시 울진엑스포공원 공연장에서  환경, 생명, 평화, 공존을 주제로 한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 2005- 제3회 울진 문학축전>이 화려한 막을 연다.   이번 행사는 <2005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 D-30일 기념 예술제로서 엑스포 성공을 기원하는 축하행사이다.

행사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황석영 소설가),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고은 시인), 2005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용수 울진군수) 공동주최로, 한국문학평화포럼과 경북작가회의(회장 이대환 소설가) 울진문학회(회장 이명희 시인)가 공동 으로 주관한다.

이번 <울진 문학축전>은 울진 역사상 가장 큰 전국 규모의 행사로 전국의 문화예술계와 일반 군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벌써부터 집중되고 있다. 

옛 부터 산림이 울창하고 진귀한 보배가 많은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울진(蔚珍)”은 발길 닿는 곳마다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관광지로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울진군이 지금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생명의 땅, 친환경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현대의 바쁜 일상과 인스턴트 식품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건강한 삶을 최우선으로 삼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웰빙(Well-Being)과 더불어 한국농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될

『2005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는 국내·외 친환경·유기농 기술에 대한 모든 정보와 유기농 선진국의 사례들을 한 곳에 모아 일반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유기농산물의 모든 것을 직접 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안전한 농산물과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2005년 7월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울진 왕피천 엑스포공원을 무대로 펼쳐질『2005울진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문화예술계가 힘을 보태고자 열리는 이번 <울진 문학축전>은 유명 문인의 시낭송과 소설낭독은 물론이거니와 문학과 노래, 춤, 마당극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제이다. 이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행사날인 22일(수) 오후 2시 식전 행사로 울진엑스포 공원에서 장승제가 열리며, 이어『2005울진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의 D-30일 기념식이 울진엑스포 조직위 주최로 개최된다.

 이어 <울진 문학축전> 식전 행사로 한국 시단의 원로 및 중견인 신경림, 고은, 김지하, 문병란, 서정춘, 천양희, 김준태, 정호승, 김용택, 이재무 시인과 김명인, 도종환, 고재종 등 울진문학축전 참가자 및 김만수, 안상학 차영호 등 경북작가회의 회원, 김진문, 남태식 등 울진문학회 회원 등 전국 각지의 대표적 문인 40여명의 시작품을 한데 모아 울진 친환경 생태 사진과 어우러지는 걸개 시화전을 행사장 주변에 전시할 예정이다. 울진, 환경, 생명, 농업 등을 주제로 이 걸개시화전 작품은 울진 엑스포 기간 내내 엑스포 공원에 상설 전시될 예정이다.

  이날 오후 3시 엑스포 공원 공연장에서 울진 문학축전 본행사의 막이 열린다. 

  먼저 광대패 모두 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한국 마당극의 시원을 이룩한 광주의 대표적 마당극단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공연이 30분간 펼쳐진다. 수입농산물의 파동으로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이 현실을 한판 걸쭉한 풍자극으로 담아낸「팔자 팔자 쌀팔자」공연은 울진친환경 농업엑스포의 당위성을 한판 마당극으로 펼칠 예정이다.        이어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현재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김지하 시인의 기조강연이 시작된다.

  김지하 시인은 일찍이 원주에서 <한살림 생협운동>을 최초로 펼쳐내 생명의 유기농을 주창한 선구자로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날 생명의 유기농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강연 요지 참고)    이어 <누구 없소> <봄날은 간다> <청량리블루스>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소리의 마녀’- 가수 한영애 씨의 공연이 엑스포 공원 무대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며, 생명의 농업 시낭송 첫번째 순서가 막을 연다.

  울진 출신이자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인 우리 문단의 중견 김명인 시인과 광주에서 활동 중인 대표적 농민시인 고재종 시인 그리고 울진 지역 출신 남효선 시인이 생명, 환경, 상생, 공존을 주제로 한 시낭송을 한다. 뒤이어 서울예대 김기인춤패의 춤공연과 생명의 농업 시낭송 두 번째 순서로 대구작가회의 회장인 김용락시인, 울진문학회 회장 이명희 시인, 울진 출신 시인 방남수 시인의 시낭송이 펼쳐진다.

    다음 순서로 한때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모은 연작소설 <절반의 실패>로 유명한 한국 소설문학계의 대표적 여성작가 이경자 씨의 소설낭독에 이어 이태리 벨칸토아카데미를 졸업한 포엠테너 김명재 씨의 가곡 공연이 있다. 이어 생명의 농업 시낭송 마지막 순서로 작가출판사 대표인 손정순 시인과 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 이종암 시인 그리고 이 축전 행사의 마지막 휘날레로 100만부가 팔린 한국 초유의 베스트셀러 시집 <접시꽃당신> 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시낭송은 대자연의 소중함과 우리 삶이 지향해야 할 화두를 제시할 것이다. 

    이어 울진엑스포 성공을 기원하는 김기인춤패의 북춤 공연이 있은 다음 <북한강에서> <시인의 마을> <촛불> 등으로 유명한 정태춘, 박은옥 부부 가수의 작은 콘서트가 열려 <울진 문학축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울진 문학축전>은 울진군 엑스포 관계자 등 지역 사회 단체 회원과 지역 주민 그리고 이 지역 청소년 등 약 2천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이 행사에 참석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창비, 문학과지성사, 실천문학사, 랜덤하우스중앙, 사게절, 산하, 동학사, 화남, 모아드림, 작가, 시전문지 시경, 도서출판 시인 등 유명 출판사에서 기증한 도서를 증정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아울러 이 행사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국무총리복권위원회 그리고 울진엑스포 공식후원사인 한국수력원자력, 농협, 한국마사회, 한국공항, LG전자, 유기농신시 그리고 울진지역 신문사인 울진신문, 울진21, 울진타임즈, 시민의 신문 경북본부, 울진읍청년회 등이 후원사로 참여해 이 행사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울진 문학축전 기조강연 요지

지역생명과 평화운동               김지하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 2005- 제3회 울진문학축전」을 맞아 몇 마디 도움말을 드리고자 한다. 

  ‘테드 벤튼’이라는 생태마르크스주의자가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노동관이 19세기 당시 유럽의 조악하고 대규모적인 초기 제조업 굴뚝공장시대의 공업노동만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바로 그 노동관에 입각해서 전개된 사회운동, 교육, 문화, 정치일반에서 쇠토막을 자르고 붙이고 용접하는 식의 반생명적인 것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바람직한 생명노동은 오히려 농업노동관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노동은 곡식이나 채소의 그 본래 바탕 또는 그 결의 기운을 모시고 존중하면서 슬며시 솎아주거나 벌레를 잡아주면서 그 열매를 얻어 종자는 남기고 나머지는 먹으며 여분이 있으면 내다 파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히 곡식이나 채소의 생명을 모시고 따라가는 생명노동이 되는 것이니 거기에 기준을 두고 사회적 활동인 교육문화를 구성하여 그 자체가 생명운동이 된다는 것이 벤튼의 주장이다.

  오늘에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만약 이것을 중요시한다면 바로 이 같은 노동의 생명적 성질을 반영한 공업노동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옛날에 유명했던 경기도 안성 유기막의 유기공업을 그 실례로 들어보자.   동양의 생명사상은 곧 기(氣)사상이요, 음양론인데 안성 유기막의 노동과정은 철저히 음양론과 기 사상에 입각해 있다. 놋그릇에 녹이 쓸지 않도록 하기 위해 쇠를 인천 앞바다의 갯펄에 며칠씩 박아놓는다거나 징같은 악기를 만들 경우, 맑은 소리를 내기위해 삼각산 맑은 계곡물 속에 며칠씩 담가놓거나 하는 것이 모두 쇠의 생명적 성질을 고려하는 과정인 것이다.

  더욱이 징을 만드는 사람들은 말하는 과정에서도 결코 ‘소리를 내게 만든다’라고 말하지 않고 ‘울음을 깨운다’라고 말한다. 울음 울 줄 아는 생명이 이미 쇠안에 잠자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요즘에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농업, 공업 및 일체 생산은 생명을 기준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생명농업만이 아니라 생명공업이 다시금 평가받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유기농산물 얘기 한번 하자.  약 20년 전 <한살림생협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강원도 원주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기한 적이 있다.  

?유기농생산?소비?유통운동이 생명문화운동과 결합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중산층 이기주의로 기울고 생산자는 장사꾼 배짱으로 빠져 버릴 것이다??라고.  지금 웰빙 바람과 함께 바로 이러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생명이라는 문제의식을, 생산자는 생명철학을, 유통 담당자는 생명의 순환원리를 철저히 생각하는 문화운동을 병행 결합해야만 할 것이다.

  웰빙바람을 타고 유기농산물 매출액이 늘어나자 재벌들이 여기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만주 요녕성에서는 대규모 유기농산물 재배가 시작되고 있어 이들이 국내에 싼값으로 대량 공급되면 지금의 유기농운동은 일거에 몰락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  이 역시 약 20년 전에 이미 제기되었다.   지역 생명농산물운동밖에 없다.   풍수지리에서는 형국(刑局)원리가 있다.

  서양 생태학에는 생물지역(生物地域)원리가 있다. 같은 것이다. 일정한 지역 안에 자라는 생명은 서로 구심작용과 수렴작용을 하므로 조직적으로 서로 닮게 되고 상호 보완하면서 공생한다.   병이나 독 옆에 반드시 그것을 고치는 약초가 자라는 법이다.

  그러므로 ‘제철에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건강에 이롭다’는 원리에 입각해서 한 지역 내에서 계절에 따라 공급계와 소비계가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웰빙시대다.   겨울딸기를 먹는 데는 성장촉진제가 필요하고 만주에서 농산물을 공급할 때는 방부제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성장촉진제와 방부제는 암 발생의 직접원인이 된다.

  유기농생명운동이 지역단위로 분산하면서 지역끼리는 또 서로 작목별?품종별?시기별 유기적 연결을 가지는 새로운 생명운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생명은 개별화하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 공진화하고 공생한다. 이 생명원리를 따르는 것이 바로 진짜 평화인 것이다. 가만히

그 이치를 실제경험과 비교해서 생각하고 토론하며 실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할 지역 생명운동이며 참다운 삶의 평화운동일 것이다.

저자 약력/김지하

 김지하 약력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며, 김지하(金芝河)는 필명이다. 1964년??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6?3사태)??으로 첫 투옥된 이래??오적필화사건,비어필화사건,민청학련사건,고행…1974년 필화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약 7년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79년 봄날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던 중 감옥의 시멘트 틈새에 개가죽나무가 뿌리내리는 장면을 목격하고,생명사상,에 깊이 심취하게 된다. 1980년 출옥 이후 생명?환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고, 우리의 고대사상과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문명적 대안을 동아시아에서 찾는 사상적 편력과 상생?평화운동을 의욕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1969년《시인》지로 등단한 이래 주요 시집으로『황토』『타는 목마름으로』『애린』『중심의 괴로움』『화개』『절, 그 언저리』『유목과 은둔』등을 펴냈고, 주요 산문집으로『김지하의 화두』『사이버시대와 시의 운명』등이 있으며,『김지하전집』『김지하회고록』등이 있다. ‘로터스특별상’ ‘위대한시인상’ ‘이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등 오늘의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울진 문학축전 시낭송 

쌀  - 김명인

일찍이 농사가 근본이었을 때쌀 몇 가마니만 툇마루에 쟁여놓아도오는 겨울이 얼마나 뜨뜻 든든했었던가

배고픔도 하릴없던 그때 그 농업에다시는 주눅들 일 없으므로지금은 누구도 쌀을 노래하지 않는다이만큼 배 두드리며 살게 된 건자급률 삼십 프로도 안 되는 땅 힘이 아니라서무엇하러 우리가 잡초 우거진 둑길에 서서묵정논 위로 쏟아지는값없어도 흐벅진 저 나락 볕아깝다 안타깝다 하겠느냐

논배미에 코 박고 죽을 늙은이들만삽 둘러맨 채오늘도 햇살 쨍쨍한 여름 들판 바라보고 섰다

김명인 약력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주요 시집으로 『동두천』『물 건너는 사람』『바닷가의 장례』『바다의 아코디언』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들길 - 고재종

모내기 끝난 들에치자꽃 향기 퍼진다그 향기 따라어린 모 뿌리를 잡는 들길 걷는다바람은 솔솔 불어길 옆 가득 피어나는 개망초꽃그 숱한 흔들림으로 걷는다흔들리며 걷는 게어찌 또 들길 뿐이랴발자욱 저벅일 때마다 뚝 뚜욱그치는 개구리 울음에 젖어 걷는다울며 젖어 걷는 게어찌 또 들길뿐이랴걷다보니, 보아라바람은 자꾸 스쳐와저 볏잎들 지극히 사운거린다어린 모 땅맛에 젖어드는저 기쁨의 떨림의 푸르른 몸짓왜 우리에겐들 흐르지 않으랴저만큼 산비얄의 나무들은녹녹청청, 노을까지도 물들인다그 물들임에 나도 물들어 걷노니이제 산 우뚝 막아서서돌아서 들 걸어든다돌아서 걷는 이슬길에도치자꽃 향기 그윽하여모쪼록 그 꽃과 향기 몇 점주막의 술잔에 띄우고 싶다

고재종 약력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사람의 등불』『날랜 사랑』『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쪽빛 문장』등이 있음.‘신동엽 창작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꽃을 노래한다              남효선 - 생명은 정말 따뜻합니다

살아가는 일 또한 정말 따뜻합니다

며칠 전 달랑무를 심었습니다푸석한 흙을 으깨고 까만 달랑무씨를 묻었습니다싹이 보이지 않아 썩 속을 태웠습니다어느날 참으로 자그마한 싹이 돋았습니다싹이 헤집고 나온 자리는 보송보송한 흙으로 둘러싸여맑고 고운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 어머니 뱃등처럼 골이 패여 있었습니다싹은 제 스스로 이쁜 잎새를 피웠습니다실핏줄이 말갛게 드러나는 제 꽃을 스스로 피웠으니외로울 게 없습니다며칠 전 싹 틔운 꽃잎이 대견스러워말간 잎사귀 만지며꽃을 바라봅니다.시냇물 흐르는 소리에 섞여 연록색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산이 푸석한 흙을 베고 말간 잎새 위로내려앉았습니다. 비누방울처럼 매끈한 햇살도 함께 내려앉았습니다.

남효선 약력1958년 경북 울진 출생.1989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사화집으로『네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길 위에서 길을 본다』등.현재 국사편찬위 사료위원, 시민의 신문 경북본부장.

옛마당 -  김용락

시골집 마당 한 켠이 민들레 밭이 됐다노란 민들레꽃이 밤하늘의 별처럼 수북하게 맑은 얼굴을 내밀고 있다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때문이다한때 6남매와 온 식구들의 발길로 아스팔트길처럼반들반들하던 마당이 어린 아들들의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로두텁던 흙의 살이 다 닳고 앙상한 뼈가 드러나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정강이에 피가 흐른 적도 있었다그 넓은 마당에 뱀이 기어 나올 듯 풀이 수북하게 자라나고 민들레가 가득 피었다몇 송이는 이미 피어 하얀 민들레 씨를 달고 있다바람이 불 때마다 민들레 씨앗을 단 가는 목대가 바르르 떨린다꽃씨를 제 몸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인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 더 센 바람이 분다면 결국 민들레 씨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새로운 터를 잡고 제 식구를 거느리면서 민들레 밭을 이루어 갈 것이다오늘은 어버이날 그러나민들레는 오랜만에 나처럼 어린 식솔을 데리고이 오래된 옛마당을 밟지는 못할 것이다그래서 까닭 모를 이 무연한 슬픔에는 결코 빠지지 못할 것이다

 김용락 약력1959년 경북 의성 출생.1984년『창비신작시집-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   시집으로『푸른별』『기차소리를 듣고 싶다』평론집으로『민족문학사 논쟁』 등. 현재 대구작가회의 지회장, 경북외국어대 교수.

 어머니의 유물 - 이명희

살아생전  내 어머니  새벽이슬 털어가며 정성으로 닦으시던 놋요강 지푸라기 여남은 가닥 뭉쳐 그리도 반짝이게 만드는 기술 내 일찍이 터득은커녕 벌건 대낮 우물가에 하늘을 담고 보란 듯앉음새도 창피해 누가 볼라 자꾸 뒤 곁으로 치워 놓고 해거름에어머니 이리저리 숨바꼭질 하듯 찾으시면 그 제서야 슬몃제 자리 두고는  공연히 코 매어잡고 팽  달아나기 바빴더니 돌아가시기 전  병 수발하며 한평생 어머니 치마 자락에서 넘실대던눈물 퍼 와 닦을 때 그 때에 비로소 어머니 닦아 온 것이 무엇인지알게 되었지만.

 이명희 약력 1961년 경북 의성 출생.  효성여대 불문과 졸업. 2002년『작가정신』으로 등단.  사화집으로『눈은 무게가 있다』등.  현재, 울진문학회 회장.

울진 죽변에서 - 방남수

내 열다섯 살 적 바람이 불어 외로운 그날이었다.푸른 송백 너머 청춘의 희디흰 대꽃들이 온종일 펄럭거렸다.

당신과 내가 지금 살아있다면 신라 봉평비 너머 그 삼층석탑 위뭇 생명의 고요한 숨결 들으러 길 떠나보자.

천년 그리움이 난분분하는  불영사 혹은 불영 계곡 몇 겁의 생이 환생한 기다림이더냐.

갈매기 훠이훠이 춤을 추는 망양 앞바다내 마흔 살 적 천지가  울진대게 앞발처럼 꼿꼿이 일어설 때그날 난 저물도록 그 대밭가 손수건처럼 온종일 춤을 추고 싶었다.

 방남수 약력 1958년 경북 울진 출생.  1993년『문예한국』으로 등단. 『시경』『시인정신』으로 작품 발표. 주요 작품으로「위풍당당 독도」「대추리, 들녘이 탄다」 등. 현재, 도서출판 화남 대표.

울진 후포항 - 손점순

그리움의 길 트자면 동해 끝까지 가야만 한다바닷가 애기 무덤 끼고 몇 십리는 더 가야 한다가도 가도 꼬리 감추는 명사십리 해안길

오징어 덕장엔 옛날의 바람만 불고너덜거리는 민박집 간판 사이로 바다를 끌어안았던 철지난 그물만 널려 있다 서로 부대끼면서 펄럭이다 만 햇살!내 젖은 상심 꺼내 저 건조대에 말릴 수 있다면,그 생각 너머로 까마득히 솟아오른 千의 갈매기떼 우수수 靑竹잎 지듯 바다로 떨어진다어망에서 잽싸게 떼어낸 청어 한 마리가팔딱팔딱 고추를 내민 꼬맹이처럼 뜀박질할 때면 어느새 포구는 온통 은빛 불똥 조각 속에 잠기는지,사람 없는 등대가 그 빛살 받아 희게 빛난다

그대 정말 사람 그리워 울어본 적 있는가?모두가 홀홀히 떠나간 그 자리에삼십 리 옛 紅燈을 불 밝히는 오, 배롱나무

손정순 약력1970년 경북 청도 출생. 2001년『문학사상』으로 등단.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주요 작품으로「개심사 거울못」「당신에게 가는 길」등. 현재, 도서출판 작가 대표.

화살표를 끌어안다 - 이종암

해마다 여름 오면 원적原籍을 찾아 물 냄새 맡으며 한사코 거슬러 오르는 수많은 화살표들 마을 앞 江으로 왔다 저 화살표들 세며 동창천 방둑 시오리 길 걸으며 학교를 오고갔다 고향 벗어나 성공하리 주먹 쥐고서

수박향이 난다는 은백색 번득임의 힘찬 은어 떼 끝내 나는 저 은빛 바람이 되리라 열 서넛부터 수도 없이 걸어, 걸어서 불혹에 깨달았네 산다는 것은 다만 한정 없는 그리움인 것을   →  →  →  →  → 저 화살표들 골똘히 쳐다보면 직선이 아니다 아래로 굽어져 가는 진행형의 곡선, 그게 보인다

번득이며 강을 오르는 힘찬 화살표는 원적의 냄새를 찾아 길 떠나는 맹목적 그리움의 몸부림이다 찾아갔다 되돌아 와서 또 다른 작은 화살표들 힘겹게 부려놓고 스러지는 은어의 뒷길이 이제 조금 보인다

이종암 약력1965년 경북 청도 출생.1993년 『포항문학』으로 등단시집으로『물이 살다 간 자리』『저, 쉼표들』현재, 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 시동인 <푸른시> 회장, 『아트포럼』편집인.

저녁 숲 ―스콧니어링을 그리며

도종환

모란꽃도 천천히 몸을 닫는 저녁입니다같은 소리로 우는 새들이 서로 부르며나뭇가지에 깃드는 걸 보며 도끼질을 멈춥니다숲도 오늘은 여기쯤에서마지막 향기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엔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어제 심은 강낭콩과 감자에게도다람쥐와 고라니에게도 편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흩어진 장작을 추녀 밑에 가지런히 쌓으며당신을 생각했습니다당신이 주류사회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난 뒤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갈 때는진보에 대한 희망도 길도 잃었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지만그 대신 거대한 광기와 파괴와 황폐함에서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흐르는 물에 이마를 씻고 바위 위에 앉아 생각해 보니당신처럼 오늘 하루 노동하고 읽고 쓰고 자연과 사람의 좋은 만남을 가지진 못했습니다그러나 흩어진 나무토막과 잔가지들을 차곡차곡 쌓듯 내 삶도 이제는흐트러지지 않고 질서가 잡힐 것이며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그리고 간소하게 저녁을 맞이할 것입니다어둠이 숲과 계곡을 덮어오자 땅 위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일제히 별을 향해손을 모읍니다우리 모두 똑같은 생명을 지닌 한 가족이며크고 완전하고 넓은 우주의 품에 들어넉넉하고 평온해지기를 소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오늘밤은 아직 구름에 가린 별들이 많고내 마음에도 밤 안개 다 걷히지 않았지만점차 간결한 삶의 단순성에 익숙해지고일관성을 잃지 않으며내 눈동자가 우주의 빛을 되찾으면별들이 이 골짜기에 가득가득 몰려올 것임을 믿습니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것들 중에빠져나갈 것은 빠져나가고제 자리로 돌아올 것은 돌아와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얼굴도 웃음도 제 본래 모습을 되찾고의로움도 선함도 몸 속에서 원융하여당신처럼 균형 잡힌 인격이 되어 간다면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여름 산도 가을 숲도 다 기뻐할 것입니다생의 후반에 당신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생사의 바다를 건넌 곳에서도 편안하시길 빕니다숲 속에서도 별 밭에서도 늘완성을 향해 가고 있을 당신을 그리며

도종환 약력1954년 충북 청주 출생.1984년 동인지『분단시대』로 등단주요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등.충북작가회의 지회장 역임신동엽창작상, 민족예술상 수상.

■ 소설낭독

사람만 살아남는 지구 -  이경자

  어머니의 친정 마을을 소설의 무대로 그리다가 숫제 집을 하나 마련했다. 꽤 오래전이었다. 집을 사고는 너무 좋아서 상사병에 걸린 여자처럼 툭하면 그 먼데를 달려가곤 했었다. 마을의 작은 집들은  설악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줄기 사이의 넓지 않은 골짜기에 몇 채씩 들어 있고 골마다 이름이 있었다. 안골 뒷골 샛골 이렇게. 내 집은 마당 앞에 논과 밭이 있다. 방문을 열면 푸른 논밭이 보이고 눈을 조금 위로 들면 올망졸망한 안산의 줄기가 바라보인다. 그 줄기의 한 군데를 넘어 이곳 사람들은 산 너머로 오고 갔다. 옛날, 열아홉 살의 어머니를 태운 가마도 그 고개를 넘어 아버지 동네로 갔었다. 지금은 고개가 패여 나가고 평평한 아스팔트 도로가 생겨 쉴 새 없이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처음 한동안은 그 집과 사랑에 빠져 지냈다. 마치 운명의 장난으로 헤어진 연인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 집에 가면 내가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내 생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복원되었다.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과 세월이 만든 얼굴이며 표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들. 메뚜기 파리 모기 사마귀 쥐며느리 등등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벌레들. 나무와 풀과 꽃들. 그리고 그것들의 냄새들. 하늘의 별과 은하수와 별똥별들. 그리고 여름날 변소의 구더기와 똥냄새. 거기에다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불. 연기와 그을음 내. 거미와 벌과 제비집.

  늦봄이 되어 산딸기와 뽕 오디가 익을 무렵이 되면 그곳이 눈에 밟힌다. 입술이며 혀가 보랏빛으로 물들게 뽕 오디를 따먹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돌아오는 건 어머니의 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 뽕 오디의 보랏빛과 달콤한 맛이다. 산딸기의 새콤달콤한 맛은 또 어떤가. 열매로 치면 한창 여물 나이에도 그곳에 가면 산딸기 가시덤불을 들추고 뽕나무 가지를 휘어 내린다.

  그런데 내가 낳은 아이들은 누구도 산딸기나 오디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먹긴 하지만 도대체 엄마가 왜 미친 듯이 좋아하는지 의아해한다. 올해도 그 아이들을 꼬여서 고향집으로 갔다. 나보다 다섯 살이 아래인 여자동생과 딸들의 또래인 조카도 동행했다. 고향으로 가자면 두 가지의 길이 있는데 고속도로나 내륙을 지나는 국도를 따라 큰 고개인 한계령을 넘는 것이다.   가는 길은 대개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고향땅 양양은 동쪽 한 면이 드넓은 바다로 되어 있고 다른 한 면은 설악산으로 되어 있다.

 나는 바다가 그리워서 늘 고속도로로 고향에 들어선다. 그날도 그렇게 했다. 찻길이 분주하지 않을 시간을 골라 오후에 떠났다. 나까지 다섯 명을 한 차에 태우고 동생이 운전을 했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양양의 입구인 현남면 남애리에 닿았다. 단골 횟집 성도식당에 들려 잡어회에 오징어까지 물리도록 먹고 단숨에 조산해수욕장으로 갔다. 중복과 말복 사이의 절기였지만 이미 날은 어두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밤 바닷가로 나갔다.

 그저 바다만 구경하려는 생각이었다. 한켠에선 쉴 새 없이 폭죽이 어두운 공중으로 날아올라 불꽃을 날리며 터졌고 기다란 해변으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래는 아직 따뜻했고 먼데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공연한 그리움을 불러냈다.

 처음에 우리는 바다를 구경하려고 했다. 모래위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발을 담가보았다. 손만 씻어볼까,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물 속에 자갈이 다 들여다보였다. 물이 차지도 않았다. 나는 홀린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감기 걸린다고 모래 위에서 야단이 났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헤엄을 쳤고 머리까지 바닷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바닷물을 어떻게 씻을 것인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엄마 집에서는 샤워를 할 수 없으니 목욕탕으로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목욕탕이 몇 시까지 하는지, 그게 가능하지 않으면 찜질 방으로 가자느니, 궁리들을 했다.

 샤워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다로 들어선 늙은 나와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수영 후의 대비를 충분히 검토하고 나서야 모두들 입은 채로 바닷물로 들어왔다. 바닷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 물론 작은 물고기를 보고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바다는 그냥 바다이면서 그냥 바다가 아니었다. 내 몸에 닿은 물의 입자는 그것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면서 우주의 모든 생물 무생물과의 교감을 지닌 영혼이었다. 오대양 육대주를 훑고 은하수와 별과 흙의 틈새를 거쳐 나온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나는 그런 영혼과 역사, 시간과 공간을 감득하면서 바닷물 속으로 깊이 잠겨들곤 하였다. 행복이나 안식이나 평화라는 말로는 설명도 이해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 목숨이 하찮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겸손하지 않았다.

  시간은 잠깐 지나갔다. 아이들이 춥다고 불평하기 시작했고 동생은 기침을 했다. 아쉬움을 남기고 바다에서 나왔다. 자동차 의자 바닥에 수건을 깔고 앉아 모두들 샤워를 걱정했다. 해수사우나는 문을 닫았고 찜질방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얼마나 해로운지 아느냐, 샤워하지 않고는 잘 수 없다, 엄마의 극성 때문에 어쩌고저쩌고.

  “바닷물은 더럽지 않아.”  내가 말했다.   “아이구우 엄마!”  “엽기적이야 고모!”  아이들이 입을 모아 성토했다. 바닷물이 더럽지 않다는 것은 내 신념이었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몇 년 차이로 세상에 태어나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을 했으므로 나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해는 할 것이었다.

  “이게 다 엄마 탓이야. 바다를 구경만 하자고 했지 누가 들어가랬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또 언쟁을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문화차이였으며 서로 다른 문화들은 상호 양해되고 존중되어야 했다.

  입이 열 발쯤 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결국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시골 길은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두웠다. 아이들은 어두운 산길을 지나가면 불길한 느낌을 드러냈다. 하지만 난 집으로 간다는 사실로 가슴이 더웠다. 밤은 어두워야 하고 어두워야 산천초목이 잠을 잘 것이며 산천초목에 깃들인 날 것들도 잠을 자며 새 힘을 얻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맘과는 달리 아이들의 걱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화장실은 어떻게 가느냐, 더운 물이 없어서 어떻게 하느냐, 모기는 어쩔 것인가, 등등. 그러나 아이들의 시골 촌집에 대한 불평이 내겐 정반대로 모두 추억이고 자랑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의 나는 아이들과 먹은 나이만 달랐을 뿐 똑 같은 ‘아이’였을 것이다.   드디어 어두운 시골집 마당에 닿았다. 한꺼번에 반가움이 밀려들었다. 그 사이 구름이 벗겨져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얘들아. 별 봐라! 북두칠성 찾아 봐!” 아이들의 마음을 나와 같이 맞춰보려고 이런 말을 했다. 도시만 좋은 게 아니야. 서울이라면 어림도 없을 저 하늘과 별을 보렴. 돈 주고 살 수 있니? 이런 맘이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열쇠로 마루문을 열었다. 오래 갇혔던 낡은 집의 나무와 종이와 먼지와 그을음 내가 뒤섞여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코가 먼저 반가워서 벌름거렸다. 하지만 뒤에서 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아이들은 냄새난다고 소리치며 뒷걸음을 쳤다. 나는 죄인처럼 옷도 벗지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땠다. 아이들은 미끄럽게 생긴 좀 벌레를 보고 소리 지르고 파리를 보고 소리 지르고 거미를 보고 소리 지르고 모기를 보고 기겁을 했다.

  “이런 방에서 어떻게 자!”  한 아이가 근원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벌레가 살지 못하는 환경에선 사람도 살 수 없어!”  내가 참지 못하고 모질게 말했다.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모기 파리는 다 해충인데.”  “에프 킬라 있지? 그거 뿌려! 그럼 다 죽어! 모기향도 피우자.”  내가 말했다. 가슴에선 이미 아이들과 나의 참을 수 없는 거리가 생겼고 그 빈틈으로 환명이나 경멸이 싹트지 않기만을 바랐다. 가마솥에서는 김이 오르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다고 변소에 간다는 아이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냥 뛰쳐나왔다. 시커먼 모기가 득시글거린다는 것이었다. 살충제를 뿌리라고 했다. 얼마나 분무기로 약을 뿌려대는지 몇 미터 떨어진 부엌에서도 솨악솨악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모기가 죽었을 만큼 기다리다 변소로 간 그 애는 얼마 못 견디고 으아악 소리 지르며 달려 나왔는데 코를 움켜잡고 있는 대로 낯을 구겼다.

    “질식사할 거 같아!”  “왜?”  “암모니아 독가스!”  아이들이 전투상태에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웃었다. 웃는 나를 아이들이 미개인이나 야만인 보듯 했다.   “이모랑 엄마는 어렸을 때 그런 변소에 들어가 앞뒤로 나란히 앉아 똥을 눴단다!”  “캄캄했잖아 언니. 무서워서 성냥불 켜고.”  동생도 거들었다. 우리에겐 결코 누추하지 않은 추억이었다. 드디어 조카가 모기에 물렸다.  “빨리 침을 발라! 침이 소독제야!”

  내가 말했다. 아이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해독제를 찾으려 방안을 뒤졌다. 가마솥의 더운물을 찬 물에 섞어가며 억지로 샤워들을 했다. 샤워를 끝내자 자정이 넘었다. 방으로 들어간 아이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불 켜진 형광등 사이로 왕벌이 윙윙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충제를 마구 뿌려댔다. 고엽제를 뿌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마루와 방바닥엔 눈에 보이지 않던 여러 중류의 날것들과 벌레들이 떨어져 내렸다. 해충제는 향료를 써서 사람의 코는 속여먹는다. 해충제를 향기로 속아 넘어간 사람은 피해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방안 가득 누워서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 바다로 나가는 길에 차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나는 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길을 가로지르려는 모습을 보았다. 뱀은 자신으로부터 아주 안전한 자동차 안에서 자신을 보고 겁에 질린 아이들보다 더 겁에 질린 듯이 보였다. 편안하게 마음 놓고 자던 집에 갑자기 불이 났을 때의 공포 같은 것이 뱀에게서 느껴졌다. 뱀은 공포에 질려 어딘가로 방향도 모른 채 도망가는 게 분명했다.   “시골을 싫어!”

 아이 하나가 환멸감을 감추지 않고 소리쳤다. 나는 이미 아이들의 과잉된 뱀 공포증에 언짢은 상태였다. 여자들이 특히 뱀을 무서워하는 건 구약성서의 이브 신화에서 뱀이 맡은 역할과 미끌거리는 남성 성기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뱀이 이쁘게 생겼다.”

  내가 말했다.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나에 대한 화를 여러 가지로 저울질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내 눈은 논 가운데서 마스크를 하고 하얀 농약을 뽀얗게 뿌리는 농부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피난길에 나선 당황한 뱀을 또 보았고 역시 논에서는 농부가 농약을 치고 있었다. 

  “농약 때문에 뱀이 못 사는 거야. 뱀이 살지 못하면 사람도 살지 못해.”  내가 말했다. 뱀이 살지 못하고 달아나야 하는 농약을 만병통치에 보약처럼 먹은 벼를 사람이 ‘살자고’ 먹을 것이었다.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사흘 여행 내내 나는 말 하지 못하는 우울에 깊이 멍들었다.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해서 아무 때든 어미를 떠날 수 있는 아이들을 어미의 시골 고향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려는 내 마음은 좀체 우울에서 피어오르지 않았다. 아이들과 나의 ‘자연’에 대한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확인이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이것은 아이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세대와 문명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사람이 필요해서 이용할 가치가 없는 것은 다 사람의 적이다, 혹은 무가치하다, 이 문명의 궁극적인 지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어 우울하고 불길했다. 사람을 자연의 만생물 위에 최고로 자리 매기고 모든 생물을 사람에게 유리하고 유익하고 유용하게 이용하는데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게 하는 ‘인간만물 영장(靈長)주의’의 끝이 어떤가를 상상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다.

  내가 처음 서울로 갈 때 열 두 시간이 걸렸다. 지금 세 시간 반 쯤 걸린다. 그런데 아직도 서울을 더 빨리 오갈 수 있는 길이 닦이고 있다. 산이 벌겋게 깎여 내리고 논과 밭이 매워지는 형상이 내겐 육신을 해부해놓은 것처럼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해 보인다.

  물이 부족해 질 거라고 하고 지구의 허파인 산림이 없어져서 공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해봤자 그건 문자로 전해지는 정보에 불과하다. 아직은 돈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산과 바다와 강과 뱀과 물고기와 풀과 다람쥐들. 꽃들. 벌레들. 그런 것들 없이 사람만 남아 가짜 산 가짜 바다 가짜 벌레 가짜 꽃 가짜 풀숲들을 만들어 산다면…….  사람들 때문에 생존에 위기를 느끼는 다른 생물과 사람들 때문에 총체적으로 피로를 느끼는 지구 속에서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편안하고 행복할 것인지. 그저 이마큼이라도 나이 먹은 게 다행스럽고 내 생명이 부디 방부(防腐)되지 않아 제대로 썩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경자  약력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주요 작품집으로 연작소설『절판의 실패』『꼽추네 사랑』『할미소에서 생긴 일』 장편『혼자 눈뜨는 아침』『사랑과 상처』『정은 늙지도 않아』『그 매듭은 누가 풀까』 산문집 『반쪽 어깨에 내리는 비』『남자를 묻는다』동화집 『궁금한 게 참 많은 세상』등. 한무숙문학상 등 수상.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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