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부치는 편지-스물다섯번째] 내 나이 벌써 50을 넘었지만 「고향으로 부치는 편지」를 쓰라니 걸맞지 않게 감상에 빠진다.

 

내 고향은 울진 - 그 중에서도 북면 덕천리이다. 사철 파도소리 들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山川과 마을이 다 뭉개어지고 「울진원자력발전소」라는 거대한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정다웠던 이웃들, 산에서 바다에서 함께 뛰놀던 먼 옛날의 초동 친구들은 모두 흩어져 간데없다. 발가벗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며 하루 종일 뒹굴던 바닷가 모래밭도 없어지고, 첨벙첨벙 멱 감으며 미꾸라지·붕어를 잡던 개울도 없어졌고, 소 먹이던 들판도 감자서리·밀서리하던 밭도 없어졌고, 벼이삭 줍던 논도 다 사라졌다.

 

어린 나이에 서울의 중학교로 유학 왔다가 방학이 되면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이틀이나 걸려서 도착했던 그리운 고향, 뽀얗게 흙먼지 일으키며 덜컹덜컹 튀면서 1차선 꼬불꼬불한 흙길을 5시간 넘게 달리던 고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달려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젊고 예뻤던 어머니는 지금 늙고 치매에 걸려서 모든 것을 다 잊고 고향을 떠나왔다.

 

서울의 아들(나) 집에 와서 고향도 잊고 사람도 잊고 아들을 「아저씨」라고 부르며 살고 있다.

 

내가 객지에서 지친 마음으로 돌아가면 반갑게 맞아 눈물을 글썽이시던 그리운 어머니 - 전능했던 나의 어머니는 더 이상 고향에 계시지 않는다. 그 대신, 늙어서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 사라져 가고 머릿속이 깜깜해 지고 있는 가련한 할머니 - 그러면서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일찍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나의 외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는 늙은 어린 아이가 도시에 와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 누워 계시면서 내가 죽으면 고향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산에 묻어 달라고 하신다. 여우도 죽을 때에는 머리를 제 살던 굴 쪽으로 두고 죽는다(首坵初心)는데, 죽어서 어릴 적 뛰놀던 고향 산천에 묻히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50을 넘기니 나도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제 고향 마을에는 아버지의 뼈도, 나의 뼈도 묻힐 곳이 없다. 마을이 사라졌으니 마을을 내려다 볼 언덕도 없다.

 

그런데도 아버지나 나나 마음은 세월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더 여리어져 가는가 보다. 그래서 가는 세월을 견디기 어려워 한다. 고향이 사라져 가는 것,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없어지는 것이 견딜 수 없다. 모든 변화는 아픔이고 모든 상실은 고통이다. 그래서 밀양 아리랑 보다는 정선 아리랑이 더 좋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라는 시를 책상 유리판에 끼워두고 늘 읽는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면서 삶의 덧없음, 세상의 無常함, 세월의 無情함에 늘 마음아파 했다.

 

그러다가 요즈음은 이런 생각도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었다. 내가 보는 「겉으로 드러난 세상」-「변하고 사라져 가는 세상」은 그것이 전부일까? 그 뒤(속)에 변하지 않는 무엇, 사라져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무엇이 숨어있지 않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고향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해 본다. 내 고향은 산천도 사라지고 이웃도 사라지고 없지만, 사라진 것 뒤에서 사라지지 않고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변하고 사라지는 것에 연연하여 마음아파하지 말고,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을 찾으면 변화의 아픔을 넘어서고, 상실의 고통을 아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약력

 부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하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5-1997까지 판사로 근무하다가 변호사 개업, 현재 법무법인 화우의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박현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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