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얼마 전 고향 친구 모친상에 문상(問喪) 갔을 때 일이다. 절친한 친구의 모친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개인적으로도 보살핌을 많이 받았던 처지여서 갑작스런 부고에 적잖이 놀라고 안타까움도 그만큼 컸다.

한편으로는 문상이 으레 그렇듯 오랜만에 고향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자리인 만큼 여기저기 시끌벅적 반가운 소란이 일기도 한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인사를 나누다가 너무나 황당한 사건(?) 을 듣는 바람에 배꼽을 잡고 말았다.

얘기의 주인공은 부산에 살고 있는 고향 형님이다. 친구들과 선배들이 자리를 트고 술잔을 주고받다가 술안주로 울진 송이버섯 얘기가 나왔고, 요즘은 고향 마을 산자락에서도 송이가 난다는 소식에 다들 솔깃해져 있는데, 예의 그 형님이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것이다.

“명룡아, 기가 막힌 소식을 내가 하나 알려줄게” 긴장하면서 “예” 하는데, 형님이 말을 이었다. “요새 우리 동네에도 송이가 난다는 거 알지? 그런데 도시 놈들이 어떻게 벌써 그걸 알았는지 와서 엄청나게 캐 갔더라고” “그래요? 송이 구경도 못했던 동네인데 그렇게나 많이 나다니요?”

“내가 올해 고향에 있는 사촌 동생을 따라다니면서 송이를 좀 땄는데, 동생이 신기한 걸 보여주겠다며 골짜기로 데려가기에 따라갔더니 골짜기 곳곳에 엄청나게 많은 골프공이 놓여있더라니까? 생각해봐라 그 산골짜기에 골프공이 왜 있겠냐?

도시 놈들이 송이를 캐고 골프공으로 표시해 놓은 거 아니겠어? 송이는 해마다 난 자리에 또 난다는 걸 놈들도 잘 아니까!” 순간, 술이 확 깨면서 나도 모르게 “큭큭큭”하고 있는데, 형님은 신이 나서 자신의 무용담을 이어갔다. “내가 그 골프공을 주워서 멀리 내다 던져버리고 골프공 있던 자리에 돌멩이로 대신 표시 해놨지. 하하, 그 도시 놈들 내년에 고생 직싸게 하겠지? 하하하....... 근데 너 왜 그러냐?”

나는 골프를 할 줄 모른다. 나중이라도 해 볼 생각이 전혀 없다. 몇 달 전 추석을 쇠러 고향에 다녀온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했던 그 도시 놈이 골프광이다. 만나기만 하면 골프 얘기를 한다. 서울 장위동 어디 쯤 사는데 뒷산에 골프장이 있어서 집 주변으로 온통 골프공이 널브러져있다고 했다.

그 도시 놈은 라면박스에 골프공을 모아두었다가 고향 언덕에서 스윙 연습을 하고 왔다는 소리를 내게 했다가 이 잔소리꾼한테 엄청 혼이 났었다. 구정 때 가서 전부 다 수거해오라고 퍼부어댔었다. 내 얘기를 듣고 다들 자지러지는데, 그 형님만 망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년에 송이 많이 캐면 나에게도 보내주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그나저나 송이 맛을 본지 정말 오래다. 보훈가족이라 보충역으로 병역을 치르게 되었는데, 당시 해안초소에 근무하는 방위병들 중에는 송이 철이 되면 부득이 휴가를 낼 수밖에 없는 병사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틈틈이 어렵게 휴가를 얻어 송이를 채취했고 끝날 때 쯤 중대본부 행정실로 조금씩 가져다주곤 했다. 그때 처음 맛본 울진송이의 그 오묘하고 향긋한 냄새는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그 귀한 송이를 내년에 다시 먹을 기회가 있을 뻔 했는데, 나쁜 도시 놈의 골프공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

그나저나 그 도시 놈은 구정 때 골프공 수거하러 고향에 가야할 텐데. 그전에 그 형님 만나게 될까봐 걱정이다. 이번 설날에 공 대신 칠게 있다고 골프채를 챙겨서 갈 거라 벼르고 있던데. 아무튼 그 골프공이 모두 수거되기 바란다. 아니면 내년에 또 누군가는 산골짜기에서 골프공을 주워들고 망상의 나래를 펴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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