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54)

 

나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독서가 부족하면 책을 빌려오기도 하는데,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송파글마루 도서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주 드나들어서 아는 일이지만, 예전 같으면 꽉 차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언제나 학생들로 붐벼 대기표를 뽑아 기다려야만 했는데, 이렇게 한산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메리스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메리스가 두려워 외출을 꺼려 다중이 이용하는 백화점과 식당에는 손님이 줄어 울상이었으나 도서관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동네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손님이 넘쳤다. 잠실 교보문고에 책 읽으러 가 보았는데, 24명이 앉아 글을 읽을 수 있는 책상도 만석이었다. 주위에 놓여있는 30여석의 방석이나 의자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메리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교보매장에 넘쳐나는 손님을 보고 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수준이 높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글마루’ 도서관에 빈자리가 많으니 의아스러웠다. 사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학교 수능시험이 끝났잖아요.” 순간 멍한 기분이었다. 도서관은 시험공부를 준비하기 위해 이용하는 곳이구나. 순간, 다리가 풀리는 허탈함 마저 느꼈다.

그리고 한 달 지나 송파 글마루 도서관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만석이었다. 수능시험 끝나고 실컷 놀다가 이제 슬슬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책을 보는가 싶어 가만히 살펴보니 열에 일곱 여덟은 학교 시험공부와 자격시험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독서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부를 통한 치열한 삶의 경쟁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앨빈 토플러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치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한다. 한국 교육은 공장에서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는 것과 같아 결과적으론 공장인력을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라고 했다.

암기교육의 위주인 사지선다형 개관식 교육이 문제다. 아이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지 못하는 획일적 관치교육의 실태를 콕 짚어 말하는 그가 얄밉기도 했지만 불편한 진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며 살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독서다. 책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대신 알려 준다. 책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생각을 만나게 된다.

독서는 글쓰기 시작이다. 글쓰기는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독서를 통한 철학적 사고와 깊은 고뇌가 있어야 한다. 독서로부터 얻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끄집어내서 버무리는 과정없이는 흰 종이를 채울 수 없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공부법은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는 게 아닌, 마음껏 상상하고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창조적 사고와 삶의 이치를 통합하는 지혜가 아닐까! 지성의 참된 모습은 지식이 아닌 상상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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