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이태용 재경울진군민회장

 

국립 한경대 경영학박사 학위 취득

입지전적 삶 자체가 감동적 스토리


 

재경울진군민회 이태용 회장의 박사 학위 취득은 쉽지 않았다. 학위 논문 통과에도 5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회장은 1939년 4월 개교한 경기도 유일의 국립대인 한경학교 경영학과에 2010년 설치된 박사과정의 경영학박사 1호이다.

논문 제목은「중소제조기업 최고 경영자의 의사결정 유형에 따른 재무성과 분석」으로 처음부터 의사결정과 재무성과 분석이 이미 발표된 논문이 극소수여서 어려움 속에서 시작했다. 끝까지 밀어 붙이는 나의 외고집을 보고 다 쓰고 난 후에 지도교수님이 너무 고생 많이 했다고 격려를 해 줬다고 한다.

그는 “중도에 포기 했을 수도 있겠으나,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 작은 상아탑을 쌓아올릴 것 같아 가슴 뿌듯하고 아직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지난 3일 경영학 1호박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이 회장의 동서기공 안산 사업장으로 찾아가서 만났다.


- 회장님의 유년과 학창시절을 알고 싶어요.
울진군 매화면 기양2리에서 부농의 네 아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중학교 2학년 때 가사가 기울어 땔감 나무를 하여 매화시장에서 팔아 학비를 마련해야 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60점 이하 자에게 1점에 회초리 한 대씩을 대려 준 것이 국어 과목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30리 떨어진 울진농고를 걸어다녔고, 공무원시험준비를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가게 되었어요.

- 부산으로 내려가 청소년기를 잠깐 겪었다는데
1974년 방통송신대 농학과 입학만 2번, 그때부터 부산에서 산꼭대기 오두막집 자취생활이 시작되었고, 학비를 벌기 위해 연탄배달에 신문배달까지 안 해 본일이 없으며, 밤에는 공부하기 위해 양정에서 서면까지 10리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건강 이상과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 부산을 떠나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 출향동기나 배경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고향 분들에게 삶의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1975년 어느 봄 날 농촌에서 일하기 싫어 평소에 늘 동경의 대상이었던 서울 넓은 곳에서 큰 꿈을 펼치며 우선 못다 한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 친구를 따라 무작정 상경하였습니다.

구파발 불광동에서 산동네 다리미 할부판매를 시작했는데, 숙맥이라서 그런지 하루 한 대도 팔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였습니다. 121번 종점 오류동에서 3개월 정도 정비 보조로 올빼미 생활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했습니다. 선반공 취직을 해서 처음으로 받아본 월급은 1,600원이었어요.

1976년 구로구 개봉동 삼립식품(주) 생산공, 속칭 공돌이로 취직, 초가집 방에서 천정 쥐 잡기가 일쑤였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고비도 2번이나 넘기며, 중학교 때 가사가 기운 고향집 빚 청산을 위해서 월급 대부분을 저축하였습니다.

농고 축산과 졸업생이 현장에서 근면 성실하게 일한 결과, 1년만에 인정을 받아서 공무과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 데, 그때는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첫 번째의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1980년 예비고사 후 숭실대 전자계산학과와 대림대 기계과 합격 통지서에 기뻐할 틈도 없이 운명의 장난인 지 같은 날 같은 시에 면접날이 잡혀서 고심 끝에 대림대 기계과 입학하기로 결정했는데, 구로구 삼립식품(주)에서는 회사 창립이래 최초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1982년 대림대 졸업과 공장 퇴직후 소기업 삼화제작소 입사를 하여 결혼 후 월급 18만원을 받았습니다. 기계설계와 기술영업을 하며, 결혼 4년만에 아파트 15평 내집을 장만하여 근검 절약생활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가족과 함께 외식을 했던 기억이 없는 게 자녀들에게 제일 미안합니다.

- 사업을 하게 된 동기나 배경은
대기업 공무과에 근무하면서 공사업체와 많은 교류로 인하여 언젠가는 나도 CEO가 될 수 있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편안함 보다 직접 부딪혀 체험의 목적으로 소기업에 입사 후 처음부터 열심히 주어진 일만 했으나 2~3년 후 차차 계획적으로 자본금 마련을 위해서 10년 계획으로 저축을 하여 5천만원이라는 창업자금 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맨주먹으로 철처하게 준비와 경험을 바탕으로 1994. 6. 30일 구로구 항동에서 동서기공 회사를 창업하여 그린벨트 지역 50평 천막 공장을 임대하여 그 당시 천정 없는 화장실이라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볼 일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시작 3년만에 공장화재가 났으나 다행인지 자료가 타지 않아 재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 사업규모와 보유한 특허 기술 중 대표적인 것은.
2001년 광명시 옥길동 공장에 150평 천막으로 시작하여 2002년 꿈의 공장인 시화공단 500평으로 이전하여 현재 종업원 12명에 평균 매출액 40억원으로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하고 있습니다.

믹서, 에젝타, 진공장치, 열교환기, 반응기 등을 제작하고 특허는 엘레멘트 성형기 등 5개를 보유, 주요 납품처는 효성 외 400개 기업이 있으며, 벤처기업, 이노비즈, ISO14001 등을 보유하고, 끝나지 않은 도전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서 세계와 겨루어 보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 어린시절 꿈이 선생님이었다면 현재 오산대에 경영학 강의를 하고 있으니, 한가지 꿈은 이루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열정적으로 사시는 것 같은데 성공비결과 장래계획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해온 경험과 학위를 발판으로 지금보다 규모가 확장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과 매출액 확대를 위한 조직 확대, ITEM 확대, 박사 학위 취득으로 후학들을 위한 강의와 현재하고 있는 안산 꿈키움센터에서 봉사활동을 더욱 많이 하려 합니다.

성공비결이라고 하면 아직 성공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색하지만, 경영인은 더욱 발전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경영은 항상 전쟁터에서 전쟁하는 심정으로 전술과 전략을 개발하여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키워 나갈 것입니다.


- 회장님의 가족사항과 취미를 알고 싶어요
부인 송현순씨와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으며, 취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특기는 기계 설계와 운동이라며 인생관은 경영이념과 같이 “넓은 시야는 마음을 연다” 라고 한다.

▷1974. 울진농고 졸업 ▷1975. 삼립식품(주) 입사 ▷1982. 삼립식품(주) 퇴사 ▷1982. ㈜삼화제작소 퇴사 ▷1982. 대림공전 기계과 졸업 ▷1994. 6. 30 동서기공 설립 ▷2000. 재경울진 중.고 동문회 사무국장
▷2003. 재경원남면민회 사무국장 ▷2007. 재경울진군민회 사무총장 ▷2009. 국립 한경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10. 안산 시장상 수상 ▷2011. 한양대학교 산업디자인 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 취득「기업경영성과에 미치는 지식경영요소에 관한 연구- 최우수논문상, 한양대학교 산업경영디자인대학원 (석사) 총 원우회장, 한양대학교 총장 공로상 수상
▷2014. 재경원남면민회 회장 ▷2016. 법무부 장관표창「 소년보호위원 」수상 ▷2016. 제50회 납세자의 날 서울지방국세청장상-우수 납세자 ▷2016. 현 재경울진군민회 회장 ▷2017. 2. 22 국립환경대학교 미래융합기술대학원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중소제조기업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 유형에 따른 재무성과 분석」▷2017. 현 법무부 안산 꿈키움센터 소년보호위원회 회장, 현 한양대학교(ERICA)기업경영대학원 석사 총동문회 부회장, 현 동서기공 대표

                                        
                                         /황승국 서울지사장, 김영숙 기자 공동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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