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정 (수필가, 죽변)

 

<제18차 길따라 맛따라 여행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일상의 찌든 곰팡내가 스멀스멀 내 몸을 타고 올라올 때쯤 떠나는 시간은 특별히 내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달달하면서도 신선한 무언가를 비축해 준다.

울진읍에서 6시 45분에 집을 나와 죽변항을 지나 어시장 경매장을 돌아 죽변 친구를 데리고 울진군청 마당을 허겁지겁 도착하니 7시20분이다. 친구는 검정색 7부바지와 회색 니트가 잘 어울렸다.

‘길 따라 맛 따라’ 테마여행은 울진 화가 유영국화백의 절대와 자유를 만나기 위해 39명을 싣고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해 산 능선을 따라 꾸불거리는 바닷길을 돌아 집에서 싸온 사과를 사각사각 나누어 먹으며, 누가 함께 탔을까? 두리번거리는 백곰같이 스마일 인사를 나누니 강릉에 자리한 정동진에 도착 했다. 여긴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해돋이 명소로 유명해 여러 번 왔던 곳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란스러운 것이 싫어지고 풍경이 좋아진다.
 

내린 곳은 시간박물관(TIME MUSEUM)인데 절벽 위에 썬 크루즈가 떡하니 서있고 또 일찍 나와서 번데기 옥수수 뻥튀기를 파는 할머니는 붉은 모자와 검정색 점퍼를 입고서 눈만 빠끔히 내놓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는데 생기롭다.

사람들은 조용히 내려 찬찬히 구경했다.
감기가 심한 나의 친구는 첫 칸에 있는 커피 집( 테이크아웃) 점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었고, 마침 그 칸에 기념품점이 있어서 서울 친구에게 줄 작고 멋스러운 열쇠고리시계를 하나 샀다.

애정 하는 친구가 최근에 공부를 하러 죽변에서 서울로 유학을 떠났는데, 시간을 잘 활용해 큰 효과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어정어정 걸어서 오른쪽 박물관 안내도를 읽다보니 네모난 분홍메모장에 할머니가 미국에 사는 손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할머니의 나라가 이렇게 아름답다. 건강해라’라고 쓰여 있어 다시 한 번 풍경을 바라보니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이 모닝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으며 서로 다른 생각 속에 자연이 내어주는 아침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2018평창동계올림픽홍보관이다. 난 평창동계올림픽홍보관 이라 해서 평창에 가는 줄 혼자 착각하며 도착한 곳은 강릉시 난설헌로에 위치한 체험홍보관이였다.

실제 올림픽이 열리는 날까지 오늘로부터 346일 남았는데, 평소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데 유일하게 올림픽 때는 중계를 보는데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

선수들의 화려한 솜씨에 감탄을 연발하곤 하지만 그래도 가장 큰 감동은 김연아 선수의 한 마리 백조 같은 완벽한 피겨스케이팅이였다. 홍보관 이긴 해도 공원도 있고 마스코트도 설치되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차에서 이것저것 먹었더니 배는 고프지 않는데 점심으로 나온 된장찌개와 나물로 간단히 속을 채우고 버스에 오르니, 모자람도 넘치지도 않는 유머러스함의 대명사로 26년 외길, 울진신문사를 일으킨 전병식 발행인의 사회자로 나섰다. 시낭송과 역사 인 강 강사 설민석님 보다 더 유쾌 명쾌하게 한 자락 배워 보았으나, 머리는 노쇠하고 까먹는 시간은 알사탕 보다 빠르니 사유해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공명식 선생님의 달콤한 시낭송 중에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은 작은 열매 하나에 대한 이해와 무심히 지나친 얼핏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대추 한 알 속에 나의 인생과 당신의 인생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앗 차 깨닫게 되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8행인 짧은 이 시를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제비새끼 같이 입 벌리면 벌레를 넣어주던 올망졸망 함께 살던 막둥이가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학문하러 떠난 지 사흘째 인데 보고 싶어 방황하는 시간에는 이렇게 함께 어울리며 잠시 잊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 서울 간다고 하니 어제 저녁에 울진친구가 건네 준 작은 편지에는 ‘너를 응원해’ 라며 ‘서울 가면 꼭 내려와라 좋다고 그곳에 머물지 말고’라며 농담하는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각자의 재주가 무르익어 갈 때쯤 관광버스 노만술 기사님은 책임을 다해 서울에 도착하였으니 덕수궁 입구에는3.1절을 기념하여 태극기 집회가 또 한쪽에선 촛불 집회가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을 때 우리는 두둥, 더디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오니 봄비가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없이 먼 길 온 우리들에게 꽃가루 뿌리듯 환영 인사를 차갑게 맞이하지만 어디 울진사람들이 그렇게 나약한 신사들인가 당당히 비님을 맞아주고 정문은 막혀서 후문을 통하여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니 밝고 큰 천장과 그림이 주는 웅장함에 잠시 숨을 고른다.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저절로 감탄이 아~하고 나올 만큼 그 작품수가 많았는데 1층과 2층을 꽉 채우고 구경 온 사람들도 많아서 두 번이나 부딪혀서 미안합니다. 사과를 해야 했다.
work 작품 중에 빨강색에 노란색 산이 그려져 있었는데 강렬한 색과 선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유화를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금방 색칠한 듯 선명해서 산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커서 유화는 기름이라서 마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데 아직 마르고 있는 중인가 오래 유심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산이란 작품도 노란색 나무와 녹색 산등선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는데, 후기작품으로 편안하고 봄의 느낌이 바로 전해져 토끼라도 바로 뛰어나올 것 같아 색이 주는 느낌은 깨끗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 그런 그림 한 점 내방에 떡하니 걸어두면, 없는 힘도 불끈 생길 것 같아 꼭 돈이 생기면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초기 작품 중에 바다풀이란 작품은 얼핏 보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선인장처럼 생겼는데 바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해초를 그린 것인데, 바다 깊은 곳은 회색과 위에는 빛이 들어오고 해초는 생명력이 대단해 금색으로 칠해져 금방이라도 바다 위로 올라올 태세이다

유영국 화백의 고향이 울진이라 배를 갖고 있었는데, 일본 유학파이며 예술가인 그는 가정이 어려울 때 배를 타며 물고기를 잡아서 팔았다고 전해져 더 애정이 가는 화가이다.
정신없이 한 점 한 점 보고 있는데 시간은 짧고 벌써 같이 온 사람들은 밖으로 나간 상태 인지 친구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쭈뼛쭈뼛 뒷걸음 질치며 나왔다.
울진은 멀고 시간은 오후 4시의 길목을 향해 가고 있다.

미술관을 나와 네 번째로 구경한 곳은 덕수궁의 풍경과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을 도는데 출사 나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고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여인들도 눈에 띄었다. 한복을 입으면 무료입장이고 대여하는 곳도 있어 한번쯤 한복을 곱게 입고 덕수궁 여기저기를 거닐어 보고 싶다. 누가 뭐래도 하루쯤 왕비가 되어도 좋고 시녀가 되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울진 사람들의 환영 인사와 촌사람들의 어수룩한 서울 길을 밝혀주신 관계로 덕수궁으로 급히 달려와 주신 황승국 황유진 배재길 정미애 김영숙 전민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사는 곳은 달라도 생활의 바쁨은 같을 터인데 두어 시간 정도 함께 정을 나누는 모습은 진정 유영국 화백님의 오래전의 염원이 모아졌을 것이다.

서울에 사시는 울진 분들과 차 한 잔 못해 아쉽지만 작별을 하고 헤어져 오는 저녁시간 연잎에 잡곡밥을 넣고 찐 밥과 커다란 꽁치는 기름이 좔좔 흐르고 연근과 파래무침에 살찐 돼지가 되어 허겁지겁 먹기에 바쁜데 주인장 또한 친절해서 백점만점에 백점인 식당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여전히 곰이 재주 부리는 시간이 돌고 돌았는데, 애달픈 노래도 구성진 노래도 신중하고 낯설어서 더 귀하게 전해지는 밤, 이번 여행은 우리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한다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창으로 비춰드는 어둠이 피곤함을 덮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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