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인문사전> 서문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인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고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이 쳐진 집에서 지상의 첫날을 맞으며, 사는 동안 소나무로 만든 가구나 도구를 사용하고 죽을 때도 소나무 관에 육신이 담겨 소나무가 지켜주는 무덤에 묻혔으니, 소나무야말로 한국인들과 일생을 함께하는 나무인 것이다.

한 식물이 이토록 민족 전체의 생활과 의식을 지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나무의 식재와 관리와 활용은 또한 국가의 기간산업이기도 했다. 궁궐과 관청 등의 각종 건축, 판옥선과 같은 조선造船에도 소나무는 가장 중요한 재료였으니, 요즘말로 하면 소나무는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였던 것이다.

평생 소나무를 연구한 소나무 권위자인 전영우 교수는 “소나무가 최고의 재목이라는 전통적 믿음이 형성되는 데는 농경문화 속에서 꽃핀 장생, 절개, 지조, 탈속, 풍류와 같은 정신적 가치를 고양했던 소나무의 상징성도 한몫을 했다.”고 진단한다. (<궁궐 건축재 소나무>)

요컨대 소나무는 첫째 물질적 유용성, 둘째 정신적 상징성에서 가장 한국다운 나무, 한국적인 나무인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소나무를 물질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건축재, 가구재, 조선재, 땔감(심지어 소금과 도자기 생산에도 소나무는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다), 구황 식품, 관곽 등 소나무는 계층과 장소를 불문하고 모두 요긴하게 쓰였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물질적, 상징적 요소에다 또 하나의 소나무의 유용성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힐링healing의 목적으로 소나무 숲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처럼, 전국 각처에 있는 소나무 숲은 공해에 찌들고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그 숲에서 현대인들은 정신과 육체를 치유하는 것이다.

이는 지역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소나무 숲은 중요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이렇듯 우리 조상으로부터 현대인들에게까지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 때문에 소나무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비롯, 수많은 그림의 소재가 바로 소나무였다.

한시漢詩로부터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학 작품에 영감을 준 것도 바로 소나무였다. 수많은 전설과 민담의 배경으로 소나무가 자리하며, 전국 각처에 있는 천연기념물과 노거수도 소나무가 다수多數다. <애국가>에도 남산의 소나무가 등장하며, 유행가에서조차 소나무는 자주 등장한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라면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국목國木인 것이다.

<소나무인문사전>의 편찬 소임을 의뢰받았을 때, 소설을 쓰는 서생書生에게는 어울리지 아니하다는 생각으로 거절하려고도 했으나, 소나무를 단순히 생물학적 나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접근한다는 약조를 받은 다음에는 생각을 달리했다. 우리 민족의 국목인 소나무를 인문학적 가치로 재평가한다는 제법 거룩한 사명감이 나를 감쌌기 때문이다.

내 고향 청송에 개관한 ‘객주문학관’에 마련된 조그만 서재의 이름도 ‘여송헌輿松軒’이 아님에랴. 문학평론가 홍정선 교수가 붙여준 이 이름의 의미가 ‘소나무와 더불어 사는 집’이니, 소나무와의 인연을 뿌리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전 편찬은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의 교향악 연주에 비견될 수 있다. 여러 파트의 노력과 협업이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다. 이 <소나무인문사전>에서도 많은 분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기 때문에 출간될 수 있었다. 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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