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57)


 

묵호, 어디쯤 있는 해안가를 걸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는 상당히 높았다.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이 그어지고, 해안가로 들락거리는 파도는 달리기 선수였다. 달리는 파도는 넘어지지 않았다. 일어나서 쓰러지며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파도를 보면서 시간도 잊은 채 해가 질 때까지 걸었다. 어쩌면, 바다는 상승과 추락, 욕망과 좌절로 이어지는 일상의 우리들을 닮았다.

먹이 감을 찾는 갈매기들은 분주히 날고 있었다. 저리 파도가 높아도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모양이다. 녀석들은 높이 날아오르더니 날갯짓을 멈춘 채 맴돌다가 갑자기 수면을 향해 급강하했다. 그리고 머리를 쳐 박고 무언가 낚아채는 듯했다. 간혹 파도에 휩쓸리면서 푸드득 거리는 모습이 연출되었는데, 그것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잔인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는 고달픈 삶이었다.

나는 새우깡 한 봉지를 샀다. 카메라를 들었으니 뭐라도 만들자면 녀석들을 찍어야 했다. 그들이 너무 멀리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새우깡 던져 주었으나 허사였다. 먹이 감을 주면 달려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내가 다가가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멍하니 앉아서 바라만 보는 녀석들은 새우깡이 먹이 감인지 모르는 듯했다. 사람의 손에 길들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선은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듯 항구에 꼼짝없이 묶여있었고 한 어부가 방파제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부는 두툼한 갑바를 입고 그물에 찢어진 곳이 있는지 줄은 튼튼한지 쓰레기가 붙어있는지 살펴보는 중이었다. 어부는 아마도 파도가 잠잠해지면 그물을 칠 것이다. 저기 묶여있는 배들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출향할 것이다. 만선을 꿈꾸면서 말이다.

파란만장의 바다를 보면서 헤밍웨이이가 쓴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행운보다는 어부로써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 드디어 낚시 줄에 걸린 거대한 물고기를 상대로 망망대해에서 꼬박 이틀 밤낮에 걸쳐 고통스러운 사투를 벌였다.

노인은 말했다. “물고기야, 네가 날 죽일 작정이구나. 하지만 너도 그럴 권리가 있지. 나의 형제여, 난 너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존재를 본적이 없다. 자, 어서 와서 날 죽여라. 누가 누굴 죽이든 난 이제 상관없다.” 노인은 이 고난을 어떻게 견뎌낼지, 아니면 물고기처럼 고통을 견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면서 살점은 상어 떼에게 다 뜯기고 앙상한 뼈와 대가리만 남게 되자 노인은 이렇게 멀리 까지 나와 물고기 잡은 것을 후회하면서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결국, 노인은 빈손과 지친 모습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든다.
 

헤밍웨이는 늙은 어부를 통해 인간은 실수하며 살아간다는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을 쓴 그는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삶이란 작은 성공과 실수 그리고 후회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 역시 살아오면서 판단을 잘못해 많은 실수가 있음을 알고 있다. 지금도 나는 인생의 바다를 항해 중이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