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 저런 이야기(59)

 

녹음이 짙어가는 시기, 작년 이맘때쯤 일게다. 내가 대나무를 소재로 해서 쓴 글을 서울 송파문화원에서 박 여사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나의 글을 한참 보더니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이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철학적으로 썼네.” 누구나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거나 간에 일정한 틀의 글을 쓸 수 있다. 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정년퇴임한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다니. 나이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에 귀가 즐겁긴 하다. 그런데 그녀는 나보다 많아 보아야 너댓 살 위인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여자 나이는 잘 모른다.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여성의 나이는 꾸미기 나름인 것 같다. 하기야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보면, 원래 나이보다 다섯 살 정도 아래로 보이는 젊음을 유지하기도 한다.

나는 직장에서 정해진 나이가 되어 퇴직했으니, 이젠 인생을 알만한 나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다고 했다. 공자가 말한 예순의 나이를 나는 한참 지났으니 세상 이치에 대해서 환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지혜의 눈이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첫 대면인지라 그녀의 옷매무새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온화한 풍모에서 나이가 들어 보기도 하지만, 언뜻 보면 60대로 보이기도 하는데, 단아한 몸매에 허리가 굽지 않아서 젊어 보인다.

그녀에게 내 나이를 말해주고 싶었다. “몇 년 전에 환갑을 지났어요.”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아직 떡잎이네.”라며 웃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요즘, 60대는 청춘이요, 70대는 장년이라 한다. 내 나이 60대 중반이니 청춘이란 말인가. 듣기에 따라 좋은 말일 수 있으나, 인생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는 시기이다. 어쩌면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하여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중이다.

대화 중에 그녀의 나이를 물었더니 80세였다. 그녀는 “모두들 내 나이를 10년 정도는 젊게 보지요.”라고 말했다. 염색을 하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에 주름살이 보이지 않는 고운 얼굴이라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자기 결심에 달려 있다는 말일 게다. 80 평생을 살아오면서 어찌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여유가 있는 몸가짐을 한 것은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이었을 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집안일밖에 몰랐던 그녀는 이루지 못한 것을 하고 싶어 나이를 잊고 사는 듯했다. 늦었지만 틈을 내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면서, 2년 후에는 수필집을 낸다는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최근, 나는 그녀의 소식을 다른 사람 편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현대수필로 등단을 했고 곧 수필집을 발간한다는 소식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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