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어려운 시대에 국민의 희망을 안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달포가 지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정권들이 언제나 그래왔듯 새 정부 역시 과거사 재조명에 들어갔다. 2012년 대선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비롯해서 7가지 사건들을 국정원에서 재조사키로 했다.

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정치로부터 가장 공정해야 할 국가정보원이 파헤쳐짐의 대상이자, 파헤치기의 주체가 되는 모순이, 자체개혁이라는 폼 나는 이름으로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동계올림픽 종목에 ‘컬링’이라는 경기가 있다. 4인조로 구성된 두 팀이 얼음 경기장 위에서 표적을 향해 둥글고 넓적한 돌(stone)을 미끄러뜨려 득점을 겨룬다. 지난 번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우리 여자 대표 팀이 컬링 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낸 덕분에 우리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스포츠경기이다. 그런데 ‘컬링’은 참 특이한 게임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상에는 표적(target)과 관련된 경기가 매우 많은데, 표적을 갖는 모든 경기는 발사(shoot) 하는 순간 결과는 이미 판가름 난다. 발사된 물체가 표적에 안착하는 동안 자연현상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인위가 관여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컬링만 발사된 물체를 표적 사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위적으로 관여하고 조작한다.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게임을 창안할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흔히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시위를 떠난 화살’에 빗댄다. 쏟아진 국물이요 엎어진 요강이란 속된 표현도 있다. 또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이름 강태공(姜尙)이 자신을 떠났던 부인에게 써먹었던 명언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말도 있다.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것인데, 그릇을 떠난(shoot) 물은 어쩔 수 없다는 게 우리 동양인들의 일반적인 의식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강태공이 살던 시대와 비슷한 옛날 제논의 역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기’가 있었다.

달리기의 전설 아킬레스도 한발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는 논리다. 아킬레스와 앞서 출발한 거북이의 사이를 끊임없이 나누면 아킬레스가 아무리 달려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나눠진 부분이 부분 자체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컬링 경기를 보면 스로잉(Throwing)에서 하우스(house) 까지는 수많은 스위핑(sweeping)이 있다. 그런 점에서 컬링 경기는 나눠진 수많은 부분들을 조작하는 셈이다.

오래전 학창시절 존재론(ontoloigy)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제자 제논을 배우면서 어쩌면 서양과 동양은 그 때부터 의식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어쩔 수 없다는 동양적 의식과 시위를 떠난 화살도 과녁까지의 거리에서 끊임없이 나눠볼 수 있다는 서양식 사고의 차이,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도 따지고 또 추적하는 서양인의 습성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싶다.

과거를 따지는 일은 우리도 옛날부터 잘 잘했다. 조선 당쟁이 그랬다. 집권당이 바뀌면 일단 과거 사건부터 따져들었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면 유배와 신원(伸寃)이 되풀이 되었다. 어떤 때는 정권의 핵심이 동지사로 연경에 갔다가 정권이 교체되는 바람에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압송되어 유배 길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당쟁에서 과거사 추적에는 사건의 결과를 올바르게 되돌린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 보복성 추적이었다. 그런 경우 결과를 이미 정해놓은 과거사 추적이었다. 즉 표적을 정해놓은 또 다른 발사였던 것이다.

잘못된 과거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 짧은 컬링 경기 안에서도 수많은 부분들이 존재하듯 인간사는 셀 수도 없는 부분들로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 도막도막들을 취사선택하여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과거사 추적은 무엇보다도 투명하게, 그 무엇보다 공정하게, 그 어떤 것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절대로 의도적 관여 없이 조명해야 한다. 새 정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또다시 추적 받는 역사의 반복을 멈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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