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출신, 루부르 미술관에서 ‘울진’ 전시
AIAM의 초대, 10/21일~23일까지 개인전

 

인류에게 시간이 사유 증폭의 여정(旅程)이었다면, 공간은 그 가치를 체현시키는 장(場)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한 인류의 시공이 예술로 치환되어 압축 저장된 곳이 박물관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 박물관의 대표이자 이름이 곧 예술의 상징이다.

오는 10월 22일은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Carrousel du Louvre) 전시관에 ‘울진 바다가 예술로 승화’ 되어 전시되는 날이다. 주인공은 울진 출신 화가 정미애(Adela Jung)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위치한 프로비스타 호텔 상설전시관에서 정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그 특급 호텔의 전속으로, 현재 로비를 비롯한 주요 공간에 그녀의 작품과 소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전부터 울진과 관련한 몇몇 행사에서 만나 간단히 인사를 나눈 정도의 안면은 있었지만 터놓고 얘기를 나눌 정도는 아니었고, 더구나 울진신문의 특집부 기자로서 공식적인 활동이라, 작가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지만, 정 작가의 현재 위치는 상대를 주눅이 들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국제 앙드레 말로 협회 회원’ 으로 2016년에는 미술의 성지 ‘파리 그랑팔레 앙데팡당’ 전시를 거쳐, 올해 10월 21일부터 10월 23일까지 3일간 루브르박물관 카루젤 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트쇼핑전시회에 AIAM(앙드레 말로 협회)의 초대를 받아 개인전을 연다.
 

100호 크기의 작품 7점이 개인부스로 전시된다고 한다. 또 내년에는 ‘살롱 앙데팡당’의 라일리안 메리트(Lyliane Merit) 회장으로부터 ‘2018 루브르 아트쇼핑’ 역시 개인 부스 초대전을 제안 받았다고 했다. 전시회 이름만으로도 놀랄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름만으로는 가늠키 어려워하는 내 표정을 눈치 챘는지 작가는 간단히 자신의 위치를 짐작케 하는 단서를 내밀었다.

‘ADAGP 글로벌 저작권자’ 등록카드였다. 현재 한국에서 ‘ADAGP 글로벌 전작권자’ 저작권협회로부터 보호받는 예술가는 70여명 밖에 안 된다. 전 세계에서 약 22만 명이 등록되어 있다. 피카소, 샤갈, 르네 마그리트 등이 등록된 협회다. 그쯤에서 고개를 끄덕이자 웃으면서 자랑(?)을 멈췄다. 나는 2016년 광화문아트포럼이 선정한 2016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더라는 뒤늦은 축하인사로 겨우 주눅에서 벗어났다.

강남 프로비스타 호텔 로비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정 작가는 작품마다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서양화에는 설명을 곁들이면 이해가 쉽고 해석도 풍성해지지만, 솔직히 미술을 잘 모르는 나로서도 정 작가의 작품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녀의 작품 키워드는 ‘바다’ 라는 것, 그것도 동해바다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그만큼 정작가의 예술심상에는 바다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이다.

바다에 겹쳐 온갖 소품들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역시 가짓수만 많지 내 눈에 익숙한 것들이다. 갈매기와 물고기들 그리고 울진 출신이라면 눈에 박히도록 정겨운 바위섬과 등대, 뒤뜰에 놓였을 법한 항아리며 꽃과 나비, 잠자리, 파란 색의 새. 그리고 검붉은 금강송이 기둥처럼 공간을 받치고 있다. 작품 이름은 제 각각이지만 통합하면 그냥 ‘울진’이다. 향수를 사정없이 자극하는 매개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기억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어린 날의 순수성을 끄집어내게 하여 공감대를 형성한다.

신항섭 미술평론가의 말대로 어린 날 순수성의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때때로 심신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기정화를 위한 시스템의 작동일 것이다. 정 작가의 작품은 현대 서양화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몽환’이란 의식적 기법이 작동하지 않는다.

미술평론가들의 평론에 의하면 정 작가의 작품세계가 그만큼 현상세계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본 정미애 작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자부심은 고향의 실체였다. 몽환의 상태에서 그려지는 모호한 이미지가 아니라, 너무나 또렷해서 흐트러짐 없는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다. 작품에서 파도와 파도의 포말 뿐 아니라, 소재 하나하나가 강렬한 원색으로 그려진 까닭은 그녀의 강렬한 향수에 기인한다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정 작가의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은 감정을 고양시키는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마주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파동이 감지된다. 일테면 그림이 발산하고 있는 에너지, 즉 힘이 느껴진다. 감정을 자극하고 신체적인 리듬을 촉발시키며 의식을 일깨우는 어떤 기운이 감지된다.

이러한 내적인 힘은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그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 그리고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파동, 신체적 리듬을 촉발, 의식을 깨우는 기운. 이런 말은 내가 정 작가를 만나기 위해 출발하면서부터 떠올렸던 그 질문을 하도록 자극하고 부추긴다.

이번 루브르 전시에 정 작가를 초청한 국제 앙드레 말로 협회 피에르쿠르 협회장의 축사에도 귀가 솔깃한 부분이 있다. “나는 지난 2월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개최된 살롱 앙데팡당을 통하여 서로 함께 한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귀하가 출품하신 작품은 조상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가장 성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량을 지닌 수행자와 마찬가지로....” 조상의 전통, 성숙함과 발산되는 역량 그 비슷한 것을 나도 어렸을 때, 울진 후포에서 본 적이 있다. 그 감정을 정미애 작가의 <배는 떠나고> 라는 작품에서 다시 느꼈다.

취재를 마치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약간의 취기를 빌려 질문을 했다. “정 작가님은 혹시 후포 동해안 별신굿을 아세요? 작가님 작품에서 그 굿이 느껴져요.” “그럼요, 어머니가 굿을 할 때 초헌(初獻)을 했어요. 제가 화가가 안 됐으면 그 굿을 했을 걸요.” 용기를 내길 잘했다.

내가 좋아하는 옛 선인들의 한문에서 첫손에 꼽은 명문장(名文章) 이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序)>다. 동명성왕 신화를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 여겨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鬼)나 환(幻)으로 생각하였지만, 근원에 들어가니 환이 아니고 성(聖)이며 귀가 아니고 신(神)이었다는 이규보의 고백을 나는 동해안 별신굿에서 보았다.

<배는 떠나고> 의 배경과 같은 금강송 솔밭이 있고, 강렬한 오방색의 비단들이 성역을 휩싸고 드리운 채 나풀거린다. 그것은 바다였다. 동해안 사람들에게 바다는 신(神)이 지배하는 성역이자 서정의 근원이다. 그 근원을 행위예술로 승화한 것이 별신굿이다. 그 근원을 화폭의 예술로 승화한 것이 정미애의 작품이라 나는 생각한다. “강렬해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대상의 신체에 파동을 일으켜 감동하게 만드는 힘이 들어있다. ” 참 대단한 작가를 만났다.

정미애 작가가 전속으로 있는 서초동 프로비스타 호텔은 울진군 평해면 출신이신 김정석 회장님이 소유주다. 예술인에 대한 김 회장님의 애착은 특별하다. 국가적으로도 힘에 부치는 국악진흥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여 인재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고향 사랑도 각별하여 삼성그룹 관리부장으로 계실 때, 고졸 사원 모집에 울진 출신 후배 100여명을 선발하기도 했다. 출향인들의 고향 사랑에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현재 프로비스타 호텔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으니 언제든 감상이 가능하다.


                                                                /임명룡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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