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년 간 땅곰처럼 농사를 짓던 장순옥 할머니는 읍내시장에 나갔다가 월변 언니 집에 들렀다.

뜰 앞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려있고, 언덕배기 덤불사이에는 청둥호박과 관상용 애호박이 여기저기 열려 있었다. 황금들판을 이루는 벼 이삭과 붉은 사과와 누런 호박은 가을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할머니는 명도리 집에 돌아와서 추석 때 아들 딸 손주들에게 보여주려는 지, 청둥호박과 관상용 애호박을 다섯 개 진열했다. 모두 하나같이 윗쪽은 아름다운 주황인데 비해, 아래쪽은 일부 푸른색이다.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더니 볼품이 없어, 큰 타원형의 수반에다 함께 포개 놓았다. 주황빛 호박들은 햇빛이 드는 실내를 더욱 환하게 해주었지만, 푸른 부분은 붉어질 기미가 없었다.

사람의 손길 따라 수반에 담긴 호박은 거실 한 귀퉁이를 아름답게 장식해 준다. 거기에 들판에서 거친 비바람을 맞은 갈대와 외로우나 마음대로 피고 지는, 그래서 좋아하는 들국화를 한 아름 꺾어와 함께 두니, 호박 수반은 이 가을의 소품이 되었다.

관상용 애호박의 푸른 반점은 사람들이 지닌 발휘하지 못한 잠재된 재능처럼 여겨진다. 나는 과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처럼 숨겨진 잠재능력을 얼마나 개발해 주었으며, 아이들만의 고유한 풀씨를 마음껏 키우게 도와주었는지 돌이켜본다.

잠재능력은 흥미 있는 일에 몰두했을 때 그 능력이 개발된다니, 얼마나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해 가느냐가 이 가을의 나의 아이들에게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될 것이다. 나의 손주 아이들 모두가 이미 부모의 넝쿨을 벗어난 터다.

갈대나 들국화는 가을이 되면 아무 힘들지 않고 무위로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성과 사랑을 쏟은 만큼 영그는 유의의 산물이다. 지금은 교육 환경은 나아졌지만, 사회 환경의 오염으로 열악했던 지난 시대보다 애들 키우기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렵다.

화초를 가꿀 때 비료를 많이 주면 뿌리가 썩고 줄기가 상하고 잎이 떨어진다. 아이들 키우는 것도 햇빛을 받지 못한 관상용 애호박과 같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애들 잘 키우고 싶은 엄마라 할지라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는 모두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자녀를 돌봄에 있어서 사랑 이상 더 무엇이 필요할까. 수반에 놓인 호박처럼 어머니의 손길에서 아름다운 주황색을 발휘하여 나에게 가을의 향취를 맛보게 내 아이들에게 그릇대로, 받은 소양을 토대로 고유한 빛을 지니게 할 것이다.


                                                                   /노일순 평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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