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66)

 

서울 오금역에서 동대문 종합시장 가려고 5호선 전철을 탔다. 대부분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어느 노선 할 것 없이 요즘 전철을 타면 앉아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모두 스마트 폰에 집중한다. 열 명 중에 일곱 여덟 명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들은 문자를 보내거나 오락에 열중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시내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세월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10여 년 전만해도 전철을 타면 생활정보지나 신문을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전철 입구에는 생활정보지 가판대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하나씩 집어 들고 탔었다. 요즘 생활 정보지나 신문을 들고 전철을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정보를 스마트 폰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도 밖에 나갈 때 스마트 폰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그 속에는 지인들의 연락처가 수백여 명이나 저장되어 있기도 하지만 많은 지식과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함에 길 들려진 탓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길을 걸을 때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본다.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말한 제3의 물결인 지식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을 실감한다. 지식의 물결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문명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체험한다. 우리 모두는 미래 속으로 뛰어드는 가장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면서 그 위험에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교통안전공단에서 조사를 했다. 보행자 10명중 4명이 스마트 폰을 사용하면서 인도를 걸었고 2명이 횡단보도를 걷는다고 했다. 걸으면서 스마트 폰에 중독된 것이다. 중독은 사고를 낳기도 한다. 걸으면서 게임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여자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하느라 차가 오는 걸 못보고 발이 깔리기도 했고, 대학캠퍼스 안에서 여학생이 휴대전화를 보다가 교내 셔틀버스에 치여 숨지기도 한다.

흔히 이들을 가리켜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뜻으로 스마트폰 좀비라고 부르는데, 교통사고율은 4배로 높아진다. 스마트 폰을 사용하면서 걷는 보행자는 주변 차량을 인지하는 거리가 절반까지 짧아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소 120도를 볼 수 있는데, 스마트 폰을 보면서 걸으면 시야가 20도 이내로 줄어든다는 것. 그 만큼 위험이 커진다. 스마트 폰에 빠져 걸으면 눈 뜬 장님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지인은 지하철역에서 크게 다쳤다. 그는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보면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디어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쳐 오랜 기간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고 당시 충격으로 허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더 위험한 행동이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이다.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설마하며 운전 중에 경기를 보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발생한 교통사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에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발생한 교통사고는 연 평균 사상자 426명으로 집계됐다.
 

외국도 스마트폰 사용으로 교통사고가 증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은 운전 중 스마트폰 조작 행위는 범죄 행위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구조로 한다는 것. 이동 중 차내에서의 모바일 신호를 차단하는 기술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사고 대부분은 개인의 안전 불감증에서 기인된다. 설마설마 하면서 되풀이 되는 안전사고,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는 만큼, 운전 중에는 모바일 신호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새로운 기술을 모색하여 적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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