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진(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사교진
나의 고향 울진은 본래 강원도였으나 경제권, 교육권, 생활권은 물론 제례의식과 세시풍속에 이르기까지 영남풍(嶺南風)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지역여건은 강원도의 최남단이요, 백두대간(白頭大諫)에 가로막힌 경상북도의 북쪽에 위치한, 해안선이 가장 긴 오지 중에서도 막장과 같은 곳이다.

당시로서는 도청소재지인 춘천까지는 이틀이 걸리고 대구는 하루면 족하다. 상급학교도 삼척에 2년제 직업학교, 강릉에는 3년제 농업학교, 4년제 상업학교 뿐이니 진학도 대구로 나가는 것이 유리하고 병이 나도 대구로 가야 한다.
생활 필수품을 사는 것도 농수산물을 파는 것도 대구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군민들은 강원도보다 경상북도에 속하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 것이 사실이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이듬해에 일방적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그대로 강원도에 남아있던 군민들은 지금까지 실향사민(失鄕捨民)의 신세가 되어 한 많은 월남민과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공직자들을 대우하는 뜻에서 전출을 원한다면 현재보다 직급이나 보직면에서 하나 더 높혀 준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4급주사 계장이었기에 3급은 바라볼 수 없고 군(郡)의 과장 보직은 가능하나 하급직 자리 밖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횡성군에 같이 근무하고 있고 동향인 유명화(劉命和)내무과장이 울진군수 내정자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자기 권한내에서 책임질것이니 같이 가자고 강권하였다.

선친의 뜻은 고향에서의 공직생활을 마지막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근무하여야지 중간에서 자리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군수 역시 일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본청 지역계획 과장 자리로 옮겼으나 인력 예산 업무면에서 가장 열악하였기에 고군분투하다가 너무나도 아깝게 생을 마쳤다.

선거직 공무원이 아닌 바에야 젊어서 고향 근무를 하게 되면 지역연고, 친인척 관계, 동창, 친지 때문에 일하기가 무척 어렵고 부정비리에 휘말리기가 쉽다.
잘못하면 본인의 망신은 물론 부모와 집안의 불명예로 너무나 파급이 크고 영원히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러나 고향 잃은 실향 신세에다 버림받은 사민(捨民)처지가 되고보니 앞날이 막막하였다.
메뚜기도 5, 6월이 한철이라던데 선거철이 되어도 그 흔한 국회의원 얼굴도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사철이 되어도 속수무책으로 주체(主體=主人公)가 될 수 없고 천방(川防)감으로 대충되는 것이 예사이니 욕심을 낸다는 것은 감불생심(敢不生心)… 그저 결과에 순응할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는 실향사민이 되었기에 배경 뿌리의 연고도 선거 계몽대상자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의지 할 곳도 쳐다 볼데도 없으니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으로 각개약진 할 수밖에...
한때는 18개 시장군수 중에 5명이나 울진 출신이였으니 정말 경이적인 일이다.

김병규(金秉圭)시장, 김원희(金元熙), 주우영(朱雨英), 심영목(沈永睦), 장도경(張道京)군수 등이 일당백으로 도정을 주름 잡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여건과 정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피상적 판단으로 개인적 기량과 두뇌는 우수하나 전체를 위한 협동단결은 미흡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같아서는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었음으로 많은 예산을 들여 행정구역을 변경할 필요도 없거니와 실향사민의 비애도 생기지 않았을 뿐더러 후속이 단절되어 절연된 것이 크나 큰 한이기도 하지만 강원도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께”를 맞은 것이 큰 손실이요 그 여한은 아직도 남아있다.

울진군은 10개 읍면에다 긴 해안선을 끼고 있어 풍부한 농수산물 뿐만아니라 지하자원과 임산자원(금강송 일명 울진소나무, 송이), 문화관광면에서 보고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소광리 대광천에 있는 소나무 한송(韓松)육종림은 1,625㏊에 200년이 넘는 적송(赤松) 98,500본이 군락을 이루어 산림환경국제 심포지움과 국제수목학회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을뿐더러 송이 생산은 벼 수매 총액보다도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바다의 명물인 대게도 주산지이지만 교통 불편 때문에 외지에서는 영덕대게로 잘 못 알려져 있다.
조선조때는 유일한 교육기관인 향교도 울진, 평해 두 곳이나 되고 온천은 옛날부터 이름난 백암, 덕구에다 성류굴도 있다. 또한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망양정, 월송정이 있는 문향의 고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싱그러운 숲이나 아름다운 꽃을 보면 갖은 찬사를 보내지만 그 줄기나 뿌리는 관심 밖이다. 마찬가지로 출향을 해서 출세하거나 돈을 벌었다고하여 고향을 잊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지역 감정이나 국민화합면에서 고향을 따지지 말아야 하겠지만 뿌리를 알고 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나는 오늘도 고향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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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면 삼근초, 춘천농업학교, 강원대학교 법률학과 졸업, 강원도 행정계장, 강원도지역계획·새마을지도·지방과장, 원주·춘천·강릉부시장, 양구·원주·홍천군수, 강원도지방공무원교육원장

※ 저서- 산문집 知足의 세월 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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