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환 연구소장
타향살이 울진사람들은 여기 고정란을 사랑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감이 넘치는 문장을 올리고, 다른 이들은 실린 글들에 감동하면서 함께 향수를 달랠 것이다. 벌써 스무 번째가 올랐다니, 그런 마당을 만든 것이 가상하다. 돈 고갈로 너나할 것 없이 고달픈데, 신문발행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부치는 타향살
이 사연들을 정성스레 살피고 챙겨 만든 지면이라 함께 동참하고 싶었다.

지난 글들이 그 홈피에 잘 정리돼 있어, 모두를 한 번 읽었다. 기억나는 글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인 고향의 푸른 바다, 신선의 정기가 서린 깊은 산골, 티 없이 맑은 시냇물소리, 어머님의 따스하던 손길, 그리고 어린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 정감을 나누던 이웃들을 그리워하는, 어느 한 가지라도 뺄 수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필자는 원자력을 전공했다. 다른 글들과는 좀 달리, 이번 그림은 원전 사연들로 채우고 싶다. 혹여라도 오해를 불러올까 조바심도 난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울진에는 원전이 세워졌고, 고향의 명암이 거기에 쏠려있다. 작년까지 하루 1억 킬로와트를 훨씬 넘는 전력량을 생산하는 거대한 원전 때문에 고향은 한때, 미래가 없는 버려진 곳으로 치부돼 왔다. 어림잡아, 월 300 킬로와트 전력 소비의 일천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을 울진에서 생산해도 그런 자부심이나 긍지를 어느 누구도 느끼지 않는다.

지난 두해 전까지도 필자가 고향을 찾을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원전 주변을 맴돌면서 울진바닥 정서를 애써 외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는 없다. 방관자로서는 고향사람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는 생각을 지난 두해 동안 하루도 잊어본 날이 없었다.

용기를 내고, 김용수 군수님이나 김광원 의원께도 원전센터 유치를 간청하는 편지를 올렸지만 허사였다. 지역주민들은 원전센터 유치를 울진에서 한다면, 절단 낼 “사형선고”라 외쳐대도 울진의 대표들은 모르쇠로 무심할 뿐이다. 〈울진발전포럼〉 고문직도 자청했고, 고향사람들이 10여 차례 대전 원전센터 견학 때에도 조언자로 빠짐없이 달려갔다. 좋게 보면, 원전센터에 푹 빠진 한 마니아(maniac)이고, 달리 보면, 자폐증에 걸린 환자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울진신문 홈피에 글을 올린다. 이번에 올릴 글도 20회 째다. 거기서는 고향 네티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반-핵”이나 “찬-핵”이란 용어들이 서로 함께 만나는 한마당이기도 하다. 오해받는 경우도 있긴 했었지만,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이들도 많다. 필자에게는 그들 모두가 고향사람들이지 남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한때, 정치권에 회자된 독특한 사투리, 경상도 억양인 “우리가 남이가?”를 되새기면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을, ‘원자’를 우리 눈으로는 바로 볼 수 없다. 방사선도 열처럼, 에너지의 하나이기 때문에 센 방사선 아니고서는 오감으론 느낄 수 없다. 남아시아의 한 섬 주변을 강타한 “쓰나미(Tsunami)” 지진해일도, 15만여 명의 목숨을 진공청소기처럼 쓸어갔었지만, 지나간 흔적들만 남겼지, 파괴력인 에너지의 본질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 에너지들은 파동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다. 노안에는 안경의 도움이 필요하듯이, 그것들을 우리 오감으로 느끼려면, 도구인 원자현미경이나 방사능 감시기 그리고 전파 탐지기를 써야 한다.

원전은 피할 수 없이 센 방사능 원자들을 만들어낸다. 필자는 그것들 그리고 그 묻어나는 것들을 포함하여, ‘원전-쓰레기’라 부른다. 이것들이 인심 좋고 물 좋던 울진의 바닥정서를 쓰나미 해일처럼 휩쓸고 갔다. 하지만, 그것들을 ‘핵폐기물’로 부르는 것은 오해의 소산일 것이다. 북한을 제외하고, 한반도에 핵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외지 ‘반핵단체’ 들은 별의별 루머들을 지어댄다. 그런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부풀려, 그들의 주장들을 펴가는 데 이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에게는 돋보기가 준비돼 있기에 속일 수 없다.

앞서 얘기대로, 이 난에 실린 글들 중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직전에 실린, “100년 후 고향의 풍경화”다. 기자의 시각으로 본, 울진의 풍경을 10년 단위로 나눠 대표될 특징들만 그려놓았다. 모두가 공감할 내용들을 짚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2100년의 풍경”은 필자를 심히 불안케 할, 네거티브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그 주범은 ‘원전센터’ 유치로 어필됐다.

지금, 어느 누구도 미래 울진의 참모습을 성급하게 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고향 미래를 점술가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묘사할 수는 없다. 원전센터는 악마도, 폭발할 위험성도, 두고두고 후회될 시설물도 아님을 확신한다. 장인 눈으로 바라보면, 속속들이 보이기에 장담한다. 반대쪽 사람들은 수만 년 동안 묻어둘 원전-쓰레기라 우긴다. 지금은 완벽한 처분 방법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기술개발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몇 년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마도 수십 년 안에는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의 발견을 과학으로 인정한다면, 그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으로 생겨나는 원전쓰레기도 당연히 과학에 맡겨 처분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인류에게 문화 그리고 편의를 제공할 명제이지, 문제를 남긴다면, 과학이라 말할 수 없다.

‘원전센터’란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지어낸 용어일 뿐이다. ‘원전-쓰레기’ 들을 완벽하게 가둠 할 시설물이므로, ‘원전쓰레기 임시저장소’란 말이 더 어울린다. 문제의 글은 “당대의 어른들”이 감당할 “의무”라고 하는 말은 어른들이 함께 원전센터 유치 반대에 동참하자는 소리로 읽게 한다. 그래서 후대의 아들딸들이 어른이 되어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을 위해서 유보해 둔, 그런 미래 풍경을 그려놓았다.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고향산천은 삶의 현장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 태고의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영원히 보존되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고향에 살고 있는 부모님,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불꽃이 이글대는 생업현장이다. 그런 곳은 다양한 발전의 물결이 넘실대야 한다. 원전센터 유치의 명분이 그런 것이다.
필자도 고향이 그리울 때면, 태어난 울진읍 고성리의 한 마을 전경을 떠올린다. 남대천이 흐르는 강 언덕에 수백 년 묵은 백여 그루의 소나무 밭이 있었다. 필자가 고 2년이던,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찰나에 이를 휩쓸어 버렸다. 비록 자연이 저지른 수재였지만, 보전치 못했던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 것이 타향살이들에게는 향수를 지배할 우상이다.

변화되기를 거부하는 고향 생각은 동심처럼, 설익은 과실일 것이다. 원전센터 유치는 울진이란 과실을 완숙하게 익힐 기회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시설에 대한 주민의식은 2003년 초부터 많이 바뀌었다. 그 글에서도, “지금은 온 동네에 원전으로 꽉 찼다” 반핵하는 한 후배의 탄식을 한말로 압축하고 있다.
지금은 주민투표로 꼭지를 딸 일만 남겨놓았다. 군수 개인의 반대는 독선이요 오만일 것이다. 님의 역할은 주민 의사를 올바르게 확인할 -찬반 논의를 통한- 주민투표를 성실하게 실시하고 감독하는 그 일 뿐이다.

원전센터 유치는 주민의사로 결정돼야 한다. 그게 법이다. 이 난에 투고했던 한 애향인의 바램처럼, 난마(亂麻)에 시름하는 내 고향 울진을, “쾌도난마”로 해결할 희망이다.

“희망은 고난의 언어이며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동양고전 독법에 관한『강의』를 펴낸, 신영복 교수는 썼다. 일회성 엑스포 이벤트가 울진을 살릴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미래 울진의 ‘희망’을 덧칠하려는 일은 한 정치인의 쇼일 뿐이다. 원전센터 유치만이 ‘희망’의 대안임을 거듭 되새기자.

주승환소장은...고려공업검사(주) 연구소장, 공학박사, 방사선 관리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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