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시인/울진문화원회원)

 

울진 구산리 대풍헌과 울릉도, 독도를 주제로 한 동화가 나와 관심을 끈다. 동화작가 김일광이 쓴 『바위에 새긴 이름 삼봉이』로, 그 배경이 기성 구산의 대풍헌이다.

동화의 주인공은 수토사(守土使)로 부임한 장한상이며, 대대로 도사공 노릇을 한 구산 동네의 삼봉이네 가족들이 그 등장인물이다.

1694년 조선 최초의 수토사인 장한상은 울릉도와 부속섬인 독도를 수토한 뒤, 『울릉도 사적』이라는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다. 그 뒤 조선 조정에서는 삼척영장과 월송포 만호에게 2,3년마다 정기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 동화는 숙종 때부터 1800년대 후반까지 200년 동안 수토사가 드나들었던 역사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화 줄거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때 기성 구산 동네에서 울릉도까지 수토사를 안내하는 일을 하던 사공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삼봉이. 대대로 동해에서 고기잡이를 해온 삼봉이네는 뱃길에 가장 밝은 사공집안으로 알려져 수토선 도사공은 늘 삼봉이네가 맡아왔다. 하지만 바다에 나간 지 444일이 되도록 삼봉이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바다에서 실종된 것이다.

수토사 장한상은 삼봉이 할아버지에게 도사공이었던 아버지의 행방을 추궁한다. 바람의 풍향과 바다에 관한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꿰는 삼봉이 아버지가 있어야 울릉도와 독도에 가는 일이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는 아들 대신 바람을 잘 읽는다는 까닭으로 손자인 삼봉이를 수토사에게 딸려 보낸다.

어린 삼봉이는 어머니와 함께 수토사를 따라 울릉도로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태어났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삼봉이는 그뿐 아니라 수토사 장한상과 함께 동도와 서도 사이에서 강치를 마구 잡아 일본으로 가져가는 왜놈들도 소탕하게 된다. 울릉도 수토를 마친 장한상 수토사는 석공에게 명하여 이번 수토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을 울릉도 태하 남쪽 바위벽에다가 새기게 한다. 석공은 수토사와 역관, 사령, 도사공의 이름을 차례로 새겼다. 나중에 삼봉이가 빠진 걸 안 수토사는 그의 이름도 새기게 한다. 그리하여 『바위에 새긴 이름 삼봉』 이다.

김일광 동화작가는 포항 출생으로 호미곶에 살며, 동해안의 향토사를 소재로 한 동화를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구룡포에 있는 조선시대 군마를 키우는 말 목장을 배경으로 한 『조선의 마지막 군마』, 일제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 『귀신고래 이야기』와 『강치야, 독도 강치야』 와 같은 동화를 썼다.

그 중 『강치야, 독도 강치야』는 대한제국 말기에 일본인들이 강치(일명 바다사자)를 무참하게 잡아 죽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대왕강치 가족을 중심으로 쓴 강치들의 수난사다. 독도어부들은 강치를 ‘가제’라 해서 독도 옛 이름이 ‘가제도’ 또는 ‘가지도’라 했다. 강치들은 독도에서 평화롭게 살았는데, 1900년대까지 그렇게 많던 강치가 지금은 멸종되었다.

일본이 1905년 자기네 땅이라고 독도를 불법편입한 뒤 강치 가죽으로 만든 제품 등을 팔아 이익을 챙기려고 대량 살육했기 때문이다. 독도와 강치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최초 희생물인 셈이다. 이런 사실을 암시하는 듯 최근 문재인대통령이 착용한 넥타이 이름은 독도강치, 주황색바탕에 빼곡히 들어찬 문양은 강치여서 화제가 되었다.
 

이 동화는 독도교육의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동화의 배경이 기성 구산의 대풍헌이라는 역사 유적의 중요성은 물론, 과거 독도를 지키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노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버젓이 국제사회에 선전은 물론, 자기 후손들에게도 교과서에 기록하여 교육하고 있다. 완전 생떼, 어거지, 날강도나 다름없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작가는 독도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울컥해진다고 한다. ‘지키면 자기 땅, 버려두면 남의 땅’이라는 삼봉이 할아버지의 말씀이 뼈저리게 느껴지고, 우리 땅 독도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노력에 머리가 숙여진다. 바위에 새긴 이름 삼봉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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