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영화가 시작 되면 전쟁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 조선군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바람이 깃발을 펄럭이며 세차게 지나갈 때, 고함에 가까운 구령이 재빠르게 뒤따른다. “배! 흥! 평신!”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도 그 구령은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조선의 왕은 그 구령에 맞춰 머리를 땅에 조아린다. 그 구령은 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는 예식인 삼궤구배(三跪九拜)의 창홀(唱笏)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그렇게 처음과 끝이 삼배구고두례로 물려있다. 역사를 처음 배우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한산성에는 삼배구고두가 항상 붙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외웠고, 뭔지도 모르지만 치욕을 떠올리는 그런 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배구고두례 또는 삼궤구배(三跪九拜) 를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형태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먼저 세 번 절을 하고나서, 다시 아홉 번은 머리를 땅에 조아린다니 어떻게? 다시 꿇어앉아 머리만 땅에 아홉 번 짓이기는 건가? 헷갈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착각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연상하는 절(拜)은 유교적 전통례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엎디어 절을 하고 바로 일어서는 예법은 유교식이 아니라 불교의 예법에 가까운 형태다. 원래는 무릎을 꿇은 채로 땅에 머리를 세 번 조아리는 것이 배(拜)다.

‘배’라는 구령(唱笏)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고, 무릎을 꿇은 채 상체만 바로 세우는 것이 ‘흥(興)’이다. 그렇게 세 번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평신(平身)’에 땅에서 일어선다. 그리하여 1배(拜)다. 그런 절(拜)을 세 번 반복하므로 삼배구고두다. 따라서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동작을 빠르게 실시하면, 군대에서 유격훈련으로 악명 높은 PT체조가 된다.

만약에 영화 남한산성에서 삼배구고두를 PT체조 4번 즉, ‘쪼그려 뻗히기’ 연속동작에 응용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조선군의 ‘얼차려’가 삼배구고두였어도 참 재미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면 청태종(홍타이지) 앞에서 PT체조를 받는 인조의 모습도 연상됐을 것이다.

인조 임금만이 아니다. 중국 땅은 제쳐두고 압록강에서 남한산성까지만도 보름을 달려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청나라 기병 6천, 그나마 2천은 양화진에 배치하고 겨우 4천명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성안에는 1만3천8백명이나 되는 조선군이 있었다.

똥군기나 잡던 장수들에게 PT체조 4번 삼배구고두가 필요했을 것 같고, 장유유서를 하늘 받들듯하면서도 막상 항복 문서는 겨우 27세에 불과한 제학 이경석에게 맡긴 조선 대신들 전부에게 필요한 ‘얼차려’였다고 본다.

아무튼 청태종이 인조에게 받은 삼배고구두례의 꿀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청나라는 나라가 망해가는 와중에서도 삼배구고두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1차 아편전쟁에서 처절하게 패한 상황인데도 청나라는 항복 문서를 받으러 오는 영국 사절단에게 삼배구고두례를 원했다.

국토의 자투리 땅 정도는 오랑캐에게 넘겨줘도 되지만, 황제로서의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토의 할양보다도 예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 사절이 패한 나라 황제에게 삼궤구배의 예를 갖춰 머리를 조아릴 수는 없기에 영국의 사절단은 당연히 거부했다.

결국 황제가 머무는 북경이 아니라, 남경에서 배상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사절단이 북경에 들어가면 황제를 만나야 하고 황제 앞에서는 삼궤구배의 예를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패전 국가의 수도가 아니라, 남경에서 협상을 하는 대가로 영국은 거액의 배상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청나라는 몰수당한 아편의 보상금을 합쳐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 어마어마한 배상금은 또 다른 서양 세력을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심지어 일본까지 1/12의 모험을 걸고 달려들게 만들었다.

결국 청나라는 망했고 러시아군에 체포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하바로프스크 전범수용소에서 PT체조와 비슷한 ‘얼차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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