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그렇게 적게 먹으니 몸이 그 모양이지요.” 그 모양이라니, 이 모양이 어때서? 키 170센티에 58킬로그램 정도의 몸무게를 유지하며, 내 나름으로는 대한민국의 표준이라 자부하고 살았는데, 근래 와서 비쩍 말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가 싶다가도 가끔 화가 난다. 나는 분명히 표준이었고 그 상태로 살아왔을 뿐인데 ‘그 모양’이라니.

며칠 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가장 혼잡한 출근시간에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잠실역까지 가는 동안 몇몇 구간은 실로 오랜만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20년 전 내가 서초동에 있던 직장에 한창 근무할 때는 매일 아침마다 겪던 일상이었는데, 워낙 오랜만에 당하는 고초여서인지 복잡한 구간에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갑갑했다. 그 시절에 비해 지하철 환경은 엄청나게 편리해졌다는데 내게는 별로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실제로 20년 전에는 출근 시간이라도 2호선 지하철 배차간격은 7분 정도였다. 지금은 거의 2~3분 간격으로, 역마다 전철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다. 열차의 객차 수도 8량에서 12량으로 늘어나 사실상 전체 수송량은 2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향상된 셈이다. 그런데도 혼잡도는 여전하고 오히려 더 갑갑한 느낌이 든다.

객차 안 승객의 수는 그때보다 훨씬 더 적어 보이는데 나는 왜 못 견디게 힘들까. 답답해서 짜증을 내며 겨우 버티고 있는데, 갑자기 딱딱한 물체의 모서리가 내 얼굴을 툭 치면서 짓뭉개어 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구의 청년이 매고 있는 백팩(backpack) 이다.

어림짐작으로도 가방과 더불어 그 청년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내 부피의 3배였다. 가방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어서 가방 주인에게 인상을 쓰며 노려보았지만, 스마트폰에 꽂힌 청년의 시선은 꿈쩍도 안 했다. 쳐다보던 내 고개만 어색해져서 괜히 천정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문득, 내가 볼 수 있는 윗 공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다. 키가 170센티미터인 내 시선은 어느새 여자 승객들의 눈높이와 같아졌음을 깨달았다. 부피는 오히려 작았다. 사람들이 커졌다.

프로야구팀 히어로즈가 목동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운동장을 대대적으로 보수했었다. 야구장은 새로 지은 것처럼 깔끔해졌다. 나는 프로야구 광팬답게 자주 이용했다.

그런데 목동 구장 스탠드에 앉아 관람하는 관중들은 왠지 좌석이 불편하다며 투덜거렸다. 의자가 비좁다며 힘들어한다. 딱히 꼬집어 얼마나 작은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좁다고 했다. 의자가 좁은 이유는 목동 구장 관중석 의자는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야구장에서 떼어다가 설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키 170센티에 몸무게 58킬로그램인 나는 그래서 전혀 불편하지 않다. 나는 표준이었다. 심지어 요즘 사람들은 의자와 의자 사이에 5센티미터 간격이 있는 잠실야구장 관중석도 좁다며 투덜거린다. 잠실구장 의자는 국제규격이다. 한국 사람들이 커졌다.

10년, 20년 전 표준이었던 나를 두고 비교하면 지금 사람들은 훨씬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또 그 시절에 비해 훨씬 두꺼워진 겨울 점퍼를 입고 백팩(backpack)까지 짊어지면, 부피가 그 시절 평균의 세배가 된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커진 만큼 개인의 자아(自我)도 같이 크고 비대해진 것 같다. 우람해진 체격으로 짊어 맨 백팩이 그 시절 평균의 몸보다 두꺼워도 앞쪽에 들거나 짐칸에 올리는 배려를 하지 않는다. 오늘날 큰 키와 당당한 체격은 자랑거리다.

아주 오래전, 막대기로 땅바닥에 물고기 그림을 그리면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6학년이 되어서 안경을 썼더니, 자꾸자꾸 커져서 나중에 보니까 금붕어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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