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필 회장
# 울진의 인간명품

울진에는 예로부터 지역을 대표할만한 특산품들이 있다. 울진소나무와 울진대게, 울진송이, 고포미역, 매화매실, 성류굴과 백암·덕구온천 등 꼽자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금번 울진의 농업엑스포 행사와 관련 울진유기농가를 탐방하면서 울진에는 유기농에 관한 최소한 두 명의 인간명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명은 기성황보리의 수박귀신 임춘빈씨로 약 30년전부터 화학농약을 안 치고 공장비료를 주지 않으면서 농사를 지어 지금까지 고소득을 올리는데, 그의 유기농에 관한 기술이 아마 전국적으로도 최고수준에 있었다.

그런데 또 한사람을 발견했으니, 그는 서면 산골짝에서 24년 째 자연농법을 고수하다 때거리가 없어 두 번이나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다는 생활방식 마져도 친환경을 고집하는 강고수 방주공동체 강문필(51세) 회장이었다.
그는 뛰어난 농업기술보다는 지역사회에 유기농법에 대한 지반을 닦고 씨앗을 틔운 울진유기농업의 사실상 원조로서 정신적 지주이다.

# 강고수의 인생유전
그는 평북출신의 피난민 아버지에게서 7남매 중 다섯 째로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에서 태어나 8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라났다.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거들다가 사춘기 접어들면서 가출을 시작, 전국으로 떠돌다가 이발기술을 배워 상주에서 개업하여 결혼도 했지만, 생활이 여의치 못해 당시 서면 쌍전리에서 호황을 누렸던 중석광업소에 광부로 취업을 하며 울진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광산지역의 술마시고 흥청대는 분위기는 그를 폭력범으로 체포되도록 싸움꾼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그는 이래 살아 안되겠다는 큰 깨우침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옥방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77년경 옥방마을 통과하는 하천 상류마을인 남회룡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니, 그의 24년 째의 유기농업의 첫 시작이었다.

# 시련과 고통
처음 농사자금 270만원으로 3년간 고랭지 채소를 재배했지만, 매년 실패해 오히려 거금 1천2백만원의 부채만 짊어지게 되었다.
그 때 또 한번 깨우침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양심의 가책이었다.
자신이 먹을 농산물에는 농약을 적게 치면서 팔아 먹을 채소에는 독약과 같은 농약을 듬뿍 뿌려 키우니 하늘마져 자신의 성공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유기농법의 시작은 토양부터 살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일본의 세계적인 유기농의 대가 후꾸오까 마사노바였다.
강고수가 책을 통해 그를 만난 것은 그에게는 고통과 시련의 시작이었다.
그의 농법이란 농약 안치고 비료 안주고 씨앗을 뿌려놓고 그냥 놔두는 농법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꼬리를 물어 강고수를 「한국의 마사노바」라며, 서울 등 전국에서 그의 친환경적인 삶과 농법을 배우거나, 단지 그를 만나고 싶다며 년간 4~500명의 별별 사람들이 찾아 들었다.
그는 일약 유명해져 초청을 받아 전국을 돌며 수십만원씩의 강연료를 받아가며 200여 곳에 유기농과 친환경적인 삶에 대해 강연을 하다보니, 나중에는 관광버스로 그의 자연농법의 실상을 보기 위해 남회룡으로 밀려오는데 그가 보여 줄 것은 작물보다 잡초가 더 무성한 밭이었다.

더 능청스럽게 그들을 속여야 했다. 이것이 진정한 자연농법이라고...
그런데 멀지 않아 가랑잎을 넣어 5년간 농사를 짓고나니 살림은 완전 거덜나고 말았다. 약 3천평에 1가마 감자 씨앗을 뿌렸더니, 수확은 겨우 4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미쳤다고 하고,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은 빗나가기 시작했고, 부인은 헤어질 것을 요구했으며, 이때 그는 삶을 포기했었다고.

그런데 나중에 일본에 건너가 후꾸오까 마사노바 영감을 만나보니, 혼자 사는 노인으로 야산에다 씨앗을 뿌리고, 대나무밭의 자생 복숭아를 따먹고 여생을 즐기는 철학자적인 분으로 농사꾼이 아니었다.

# 남회룡에서 구시골로
결국 아내는 8년간을 자식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가 아이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고 돌아와 합쳐야 하는 가정분란을 겪기도 했다.
그는 남회룡에 혼자 남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 치닥거리하다 보니 시간을 다 빼앗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92년 경 서면광천교 다리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영주쪽으로 가다 통고산 휴양림 조금 지나 도로 우측에 「산골된장」이라는 안내판에서 약 오리 거리의 구시골 독가촌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러한 가족이 분거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강고수는 유기농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의 유기농산물 소비자단체인 「한살림」 때문이었다.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고 퇴비로만 생산하면 년초에 계약을 체결 시중가의 최하 두배 이상의 가격으로 구매해 과잉생산 등에 따른 가격폭락 없이 안정적인 농업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고추농사 같은 경우 마른고추 근당 시중가 1,700원 할 때도 그는 한살림과의 계약재배로 근당 8,000원에 팔기도 하였다.

96년 경 유기농 협업체 「방주공동체」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유기농산물을 생산해 한살림에 공급하기 시작, 이제는 동네 농민들이 호응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었다.
그는 유기농법이 발효농법으로서 영양제와 화학농약을 대체하는 천연 발효농약을 자가 생산하다가 건강에 좋은 발효 솔잎엑기스와 10여가지의 산야초로 만든 발효액상 음료수를 개발 지금은 수입이 꽤 괜찮은 부업이 되었다.


#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판매
현재 그의 주소득은 한살림으로부터 주문생산하는 고추장, 된장류의 판매수입으로 한살림에서 추천받은 유기재배 농가의 국산콩(80kg*60가마)으로 구시골 농장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다. 금년부터는 자신의 권유로 울진 매화산의 콩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한살림 소비자 회원세대는 약 1만여 가구로 1,400여 유기농 생산자 농가에서 이들의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으나, 그들이 요구하는 품목과 수량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만일 울진 농가들이 년초에 생산할 품목과 수량 그리고 가격을 협의 한 뒤 확실한 유기재배 농산물을 생산하기만 하면, 울진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갖추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다수 울진농민들은 유기재배는 병충해가 겁나고, 수량이 떨어져 아무리 가격이 높아도 실농하게 될까봐 권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는 재해 등으로 피해를 입는 농가의 생산비 공제를 위해 유기농산물의 판매액에서 1%씩을 출연해 현재 약 2억원의 기금이 조성되었고, 앞으로는 소비회원들의 농산물 구매액에서 1%씩을 출연토록 하게 되어 생산농가를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한살림에서는 고추 등 채소류 뿐만 아니라 약초 등에도 유기재배를 원해 오고 있으며, 울진친환경농업 엑스포를 기회로 1천여 농가가 참가한 오리농법에 의해 생산된 유기농 쌀의 대대적인 공급도 희망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살림의 회원은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유기농산물 생산농가와 생산량은 아직 매우 미흡한단계이기 때문에 울진의 유기농 농산물 생산은 매우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 농민의 마음이 바뀌어야…
그는 방주공동체에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 그에게 사람이 바뀔 것을 요구한다는데...
보통 농군들은 작물이 왕성하게 자라지 않으면 비료를 주고 싶고, 병충해가 붙으면 안달이 나 약속을 어기고 마는데, 그래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수년간 유기재배를 하다보면 적은 농토에서 품을 적게 들여 수량은 적더라도 가격이 비싸고 판로가 확보된 유기농법을 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또 그는 유기농에 대해서 농사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마져도 친환경적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기본 마인드의 바탕없이 유기농법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 과거의 농법대로 되돌아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 15세대 회원 간에는 약속처럼 지켜지고 있는 것이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폐식용유를 활용하며, 화장지도 더 비싸지만 재생품만 사용하고, 낚시나 분재 등의 반 환경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울진 농민들의 기회
울진의 방주공동체에서는 고추 야콘 당귀 잡곡 당근 오가피 등을 유기재배하여 한살림에 공급하고 있는데, 오가피의 경우 시중가가 kg당 2000원 정도이지만 한살림 공급가는 300g당 3천원으로 3.3배의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현재 강고수는 약 2천평의 농작물과 된장류, 그리고 산야초 발효엑기스 등으로 연간 순소득 약 5천여 만원을 올리고 있다.
그의 두 아들도 충남 홍성에 있는 대안학교인 풀무원기술학교에서 친환경 농업을 공부하고 있다.

24년간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오직 한 길만을 고수한 강고수, 그는 이제 한국유기농산물 최대 소비단체인 「한살림」의 중앙회 이사이며, 여기에 유기농산물 공급하는 한국 최대 생산단체의 협회 경북도회장의 직을 맡아 한국의 유기농산물 생산과 유통의 권위자가 되었다.

강고수는 울진에는 친환경농업엑스포를 개최하여 울진 유기농에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오고 있다. 울진군에서는 전력을 기울여 유기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맞은 울진 농민들은 향후 자신들의 살 길이 무엇인 지의 판단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병식 편집국장


(2005-01-06 오전 11:41:06 입력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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