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명 울진우체국장

 

10년 전, 50년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 대구로 발령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휴일이면 우리 부부는 시골에서 살던 기억을 더듬듯 대구에서 가까운 영천, 경산, 청도의 5일장을 찾아다니곤 했다.

물론 아내는 여느 여성들처럼 화려한 조명과 세련된 세팅으로 제품을 진열해놓은 백화점을 선호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시원한 공기와 푸근한 인심도 없고, 어린 시절 내가 갖고 있던 고향 장터의 기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쇼핑객을 오랜 시간동안 붙잡아두기 위해 시공해 놓은 꽉 막힌 벽을 마주하고 아내를 따라 다니다보면, 답답하고 다리가 아파서 다녀온 후면 피로감만 더해 질 뿐이었다. 그러니 백화점을 다녀오고 나면, 오일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곤 했다.

다행히 아내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었다. 그러나 ‘시원한 공간 ...’ 어쩌고 하며 아내를 설득했지만, 실상 나의 원래 목적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어린 시절, 8남매를 키워야 했던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장날이면 어김없이 농사지은 것을 이고 10리길을 걸어 장터로 가셨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분이라 읍내 사정이 어둡기도 했거니와, 장사 수완도 없으니 장터의 구석진 좁은 골목에 늘 좌판을 펼치셔야 했다.

가끔 나는 어머니를 따라 오일장에 가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혼자서 장터 구경을 신나게 하다가 배가 고파 어머니를 찾으면, 장터 구석 골목에 초라한 좌판을 펼쳐놓은 어머니의 파리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어머니를 차마 마주 보기 힘들어, 멀찍이서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 차마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날 가져간 농산물이 빨리 팔리면 국화빵 서너 개를 사주셨고, 그때의 기억은 어른이 되어 풍족한 먹을거리를 두고서도 그리워하게 되는 가장 큰 장터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고 더 진하게 각인되어 장터의 후미진 골목에 초라한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을 보면, 고향을 지키고 계신 늙은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이다.

그날도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번다하게 다니는 넓은 길을 두고 아내의 손을 잡고 구석진 골목에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의 물건을 사기 위해 갔었다. 그때 내 눈앞에는 먼 기억 속 흑백사진 같은 정경이 펼쳐졌다.

내 또래의 한 부부가 주름지고 지친 할머니의 시들어진 채소 좌판 앞에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우리 엄마 같아서요. 추운데 고생하지 마시고 다 담아주세요. 그리고 일찍 집에 가셔서 푹 쉬세요.”

내가 보기에도 웬만한 숫자의 가족으로는 그 채소를 모두 소비할 수 있을 것 가지 않아 옆에 다가가 물어보았다. “다 먹을 수 없는 양이라면 남은 양은 우리가 살게요” 그러나 그 부부는‘우리 엄마도 예전에 이렇게 농사지은 채소를 팔았기에 엄마가 생각나서 그럽니다.’ 며 그 채소를 모두 담아 가격을 치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부부가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내 물건을 서로 살려고 하고 재수 좋은 날이다.’며, 할머니는 웃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그 모습을 뵈니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오늘은 인심 좋은 아줌마가 한 번에 다 팔아줘서 재수가 참 좋았데이”나는 재수가 좋아 물건을 모두 판 할머니께서 자리를 정리하는 일손을 도와 드리고 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채소 할머니를 뵈니까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다음에 갈 때 국화빵을 사갈까요?”어머니는‘ 그때 돈만 많았으면 국화빵을 원 없이 사줬을 건데. 돈이 없어서..’라며 울먹이셨다.

그러다가 이내 밝은 목소리가 되셨다.“그나저나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인 갑다. 회관에서 화투를 쳤는데 50원도 따고, 저녁시간도 아닌데 네가 전화도 다 해주고. 다음에 오면 같이 장터에 가서 국화빵 많이 사 먹자”

그러고 보면, 시골장터는 사라지고 세련된 쇼핑몰이 늘어나는 것은 추억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기억속의 어머니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앞으로도 백화점보다는 시골장을 더 많이 다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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