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속명 이규훈) 스님

 

대한민국에서 가장 붐빈다는 서울역, KTX와 지하철을 이어주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울진 금강송을 배경으로 한 멋진 풍광의 사진을 만난다.

붉은 소나무 숲길, 각인(刻印)된 경치를 처음 본 그날 “생태 문화 관광도시 울진”이라는 글귀를 읽기도 전에 울컥 눈시울까지 올라왔던 감동은 서울역을 지날 때 마다 새롭다.

필자는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고, 세속과는 한 발짝 비껴 산에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월의 숫자만큼 고향이 그리워지고,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 골은 아버지를 닮아간다.
어디에 숨어있다 나온 마음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뉘 집 아이 할 것 없이 예쁘고 귀엽게 보인다.

“대한민국의 독립은 통일로 완성된다.” 는 나름의 신념으로 만해 한용운의 고향인 충남 홍성에 온지 10년째이다. 평생 만해 사상을 근거로 민족과 인류평화·인권보장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터전을 만들기 위해 몇 년째 지방정부와 지루한 승강이를 벌였고, 지난 10월 30일자로 확정지었다.

아직도 시골은 5일장이라는 공간에서 대를 거치며 이루어진 인맥, 학맥이 옳고 그름 보다 앞선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별수 있겠냐 싶다가도 너무 지나칠 때가 있어 고향은 어떤 곳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고향을 기억 너머에 각인된 곳이라고 한다. 각인은 최초의 경험이다. 최초의 경험은 다음에 이어지는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된다. 충청도 사람들은 바다하면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 ‘해루질’을 떠올리고, 울진사람은 쪽빛 물속을 헤집는 ‘자맥질’을 연상한다. 서로 다른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는 다름과 다름은 대화나 경험으로는 인정되지만, 결코 마음으로 동의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작용한다.

고향은 동질성이다. 갓 태어난 침팬지와 간난아이를 함께 키우면, 어떻게 될까하는 실험에서 예상을 뒤엎고 사람이 침팬지처럼 변했다. 이에 대해 인간은 모방의 천재들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인간은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변화는 무쌍하다. 벌이나 개미들의 사회는 DNA와 페르몬으로 세뇌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전 세계 개 짓는 소리는 같고, 싸움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한다. 하지만 인간은 집단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새로워진다.

복잡한 사회체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소속된 집단을 모방하여 동질성을 획득하고 집단 간의 약속을 익히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 말과 행동은 집단의 동질성이고, 축구와 같은 게임은 집단 간의 약속이다. 짐승들은 처음 보는 다른 두 집단이 축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미리 약속된 규칙을 공유함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고향에서 얻은 동질성은 최초로 획득하는 생존의 조건이므로 객지에서 같은 말을 쓰는 사람만 만나도 반가움을 느낀다. 처음 간 음식점에서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각인되어 있는 동질성의 위력이 아닐까?

이렇게 하나씩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울진특유의 거친 억양으로 큰소리치고 무뚝뚝한 행동거지와 동네사람들보다 급하게 나대는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만무했으리라. 한편 감정은 세상의 어떤 논리로도 뚫을 수 없는 인간특유의 행동양식이라는 사실을 경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본관(本貫)이라고 기록하는 각자의 고향이 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각인되고 동질성을 배운 최초의 그곳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울진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거나, 삶을 찾아 울진으로 오신 분들이나, 서로 한 발짝 더 다가서서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글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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