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시인, 논설위원)

 

우리 고전 가운데 하나로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 『청구야담』과 『명심보감』에는 조선조 선비 홍기섭(1781~1866)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홍기섭이 젊었을 때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계집종이 기뻐 날뛰며 공에게 돈 일곱 냥을 바치며 말하였다. 『이것이 솥 안에 있었습니다. 이 돈이면 쌀이 몇 가마고 땔나무가 몇 바리입니까? 이 돈은 참으로 하늘이 내려 주신 겁니다.』

공이 놀라 『이것이 어찌된 돈인고?』 하더니 곧 『돈 잃은 사람은 찾아가시오』 하고 대문에 써붙이고 기다렸다. 얼마 후 유 씨라는 사람이 공에게 찾아와 물었다.
『남의 솥 안에 있는 돈을 잃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정말 하늘이 내려 주신 것인데 왜 그것을 갖지 않으십니까?』

이에 공은 『내 것이 아닌데 어찌 가지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그러자 유 씨가 엎드려 말하기를, 『사실은 소인이 어젯밤에 솥을 훔치러 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공의 너무나도 가난한 살림을 보고 안타까워 솥 안에 돈을 놓고 돌아갔습니다. 저는 공의 청렴하심에 감동하였습니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곁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이 돈은 염려마시고 받아두십시오.』

유 씨의 말에 공이 돈을 돌려주면서, 『당신이 착한 사람이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돈은 받을 수 없다』 며 끝내 받지 않았다.(명심보감,염의편,추적엮음,백선해옮김,홍익출판사.1999.에서 인용함)

이 설화는 홍기섭이라는 선비의 고결한 『청렴정신!』 을 보여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이 아닌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 이라고 일찍이 『목민심서』에서 일갈했다. 박근혜 정권을 돌아보면 다산의 말 그대로다. 낡은 정경유착, 비민주적 통치행태는 민심이반을 초래했고 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져 과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과정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지배계층의 정경유착형 권력 비리 등 공공부문의 부정부패 지수(CPI)는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민낯으로 드러나고 있다. 2016년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공공부문의 청렴지수는 100점 만점에 53점으로, 전체 조사대상 176개국 중 52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29위로 하위권이다. 낮은 부패지수를 극복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그 나라의 국격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울진군의 청렴지수는 어떠한가? 국민권익위원회가 2017년 조사한 전국 지자체 청렴도 평가 결과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서울시(7.21점)와 경상북도(7.15점), 기초자치 단체 중에서는 경북 경주시(6.78점), 경북 울진군(6.63점), 부산 해운대구(7.28점) 등 19곳이 가장 낮은 등급인 5등급의 불명예를 안았다. 대다수 울진군청 산하 공직자들은 청렴성실하게 일했다고 하는데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근 울진군의 일부 선출직 공직자들의 뇌물수수사건,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부정부패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지만, 김영란법으로 일선 공무원들의 청렴 의무에도 지역의 지도자급 인사들의 부정부패는 ‘아랫물’의 노력을 무색케 한다. 이러할진대 공직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아래로 먹혀 들어갈까?

군민들로부터 ‘너나 잘해!’ 하는 자조 섞인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까닭이다. 선비 홍기섭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울진의 지도자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홍기섭은 물었다. 『솥 안의 돈은 누구 겁니까?』 이 말에 도둑 유 씨는 스스로 죄를 고백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개과천선했다. 이와 비슷하게 요즈음 유행하는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 이 물음에 누가 고백하고, 누가 스스로 뉘우칠 것인가? 이제 그들이 답할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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