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스님 (이규훈)

 

문명과 문화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효용이 다하면 사라진다.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유물이나 국회에서 새롭게 제정하고 개정하는 수많은 법들이 그 좋은 예이다.

예전에는 공공장소에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흡연이 지금은 길거리는 고사하고 자기 집 누마루(베란다)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똑 같은 일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른 잣대가 적용됨을 알 수 있다.

근래 들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고, 명절이후에 이혼율이 급등한다는 통계는 이미 오래되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명절의 수명이 다 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은 우선 살려놓고 보듯, 이미 현상으로 나타난 것들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해결책을 찾는데 그리 보탬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명절을 쇠고 안 쇠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필자의 견해를 말해 볼까 한다.
전통사회에서 명절이 필요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 할 수 있다. 첫째는 핏줄을 확인하고 혈연을 공고히 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동체의 대동단결을 다지는 일이다. 명절은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는 말처럼 혈연 안에서 이루어지는 차례나 성묘 등과 공동체가 함께하는 줄다리기 풍장치기(풍물친다. 매구친다. 굿친다 등으로 불림) 등 대동놀이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같은 성씨 안에서는 나이보다 항렬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은 당연했으며, 마을에 일이 생기면 가장먼저 동네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성황당 같은 동제洞祭를 지냈던 장소가 그것을 증명한다.

요즘 아이들은 항렬이 무시되고, 가장 가깝다는 삼촌과 사촌을 찾기 어렵다. 이것은 씨족이라는 혈연공동체가 부부중심으로 이전되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산업사회와 기계문명의 발달로 다양한 직업이 생겨났고 마을사람 모두가 힘을 모았던 두레·울력을 굴삭기와 트랙터가 대신함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이 느슨하게 되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명절이 담당했던 고유기능이 약화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인간관계라고 하는 겉치레, 즉 관습·규범문화의 힘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어 당장 폐기될 수 없다. 그래서 명절은 소멸 또는 변화를 선택해야 하는 과도기에 들어섰다고 본다.

관습·규범문화는 물질문화에 비해 쉽게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노소를 막론하고, 최첨단 물질문화를 대표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관습문화의 영향으로 돼지머리고사에 넙죽 절을 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까마득히 잊고 살던 유교적 규범문화가 결혼식이나 상례 등 통과의례에서 절대불변의 기준으로 등장하여 위력을 발휘한다.

명절은 관습·규범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관습·규범을 중요시하는 조·부모와 급변하는 물질문명에 따라가기에도 바쁜 자녀세대간 갈등이 전통문화 전반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 라는 말이 인류역사와 함께했듯이 시대변화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문제는 산업혁명이후 급격히 변화해온 물질문명이 최근 들어 변화를 예측 할 수 없을 만큼 속도에 속도를 더하고 있어, 인간다움이라는 단어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싫든 좋든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현재까지 생각해 왔던 인간다움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 할 수 없지만 사람이라고 불리는 동안은 혈연과 사회공동체는 유지될 것이다. 따라서 직계가족으로 폭이 좁아진 혈연공동체는 그들에게 맡기더라도 명절이 지녔던 사회공동체의 결속과 화합은 지역축제 등과 연계하여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화를 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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